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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의 시선] 보이지 않는 ‘Jason’을 추적하다: 언플러그드 바디즈 〈Jason Project〉

[무용가의 시선]은 현장 무용인들이 동료 무용가들의 공연을 쓰는 댄스포스트코리아의 새로운 비평 코너입니다. 무용인들의 전문 시선을 통해 공연의 이면과 작품의 가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동시대의 춤을 새롭게 기록해 갈 것입니다.

포커스 [무용가의 시선]

Vol.126-2 (2026.2.20.) 발행


글_ 손인영(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사진제공_ 언플러그드 바디즈



언플러그드 바디즈의 예술감독인 김경신의 신작 〈Jason Project〉은 ‘Jason’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흔적을 더듬는 작품이다. 안무가는 그동안 ‘Body’와 ‘Homo’ 시리즈를 통해 신체와 인간 존재를 탐구해 왔으며, 이번 작업에서는 시선을 확장해 인간 이전의 지구, 그리고 문명 이후의 지구를 무대 위로 호출한다. 이 작품은 서사적 재현이라기보다, 기호와 이미지의 병치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추적하도록 요구하는 구조에 가깝다.


공연은 한 남자(최우석)가 상수 뒤에 길게 누워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대는 사이드와 뒷막이 제거된 채 개방되어 있으며,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형광등 스탠드와 중앙의 의자 배열이 차가운 실험실 분위기를 만든다. 탁자 위에는 탈골된 시신이 놓여 있다. 죽음의 이미지로 시작된 무대는 곧 움직임으로 전환된다. 최우석은 일어나 공간을 오가며 사건을 매개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인물이라기보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 혹은 ‘증언자’에 가깝다.




블랙아웃 이후, ‘ㄱ’자 형태의 형광등 불빛이 무대를 채우고 나체에 가까운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은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며, 여성이 들고 온 식물은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기능한다. 극을 이끄는 역할인 최우석은 마치 내레이터처럼, 또는 역사를 증명하는 매개자처럼 극을 이끌었다. 검은 옷의 무용수 여섯 명은 끝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이들은 마치 무생물 혹은 무대 스텝처럼 형광등을 조작하고 의자를 이동시키며 장면을 구성한다. 보이지 않는 ‘작동 원리’로서의 존재들이다.


신시사이저 사운드에서 갑작스러운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전환되며, 프로그램에 명시된 「Palladio Reimagined」가 나왔다. 관, 뼈, 해골이 보였고, 그것을 보고 노트를 하며 기록하는 최우석의 모습은 마치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자의 모습 같기도 했다. 리어타드 차림의 남녀인 아담과 이브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통해 재현된 상징을 그렸다.


무대 곳곳에서 다급한 움직임이 펼쳐지고, 손전등을 든 수행자들이 사건의 현장을 비춘다. 빛은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사건을 추적한다. 관객은 특정한 의미를 붙잡기보다,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죽은 ‘Jason’의 해골이 무대 중앙에 놓이고, 음악으로 베토벤의 <월광>이 흐르는 순간이다. 죽음의 이미지는 비극적이지만 음악은 감정을 과장했다. 무대의 어둠과 음악의 낭만성은 교차적 아이러니를 만든다. 죽음은 단절인가, 연속인가. 검은 천이 펄럭이고 인물들은 쓰러지지만, 조명은 오히려 생기를 품는다.



김경신의 안무는 움직임이자 기호다. 롤랑 바르트가 일본에서 발견한 ‘의미 이전의 기호적 풍경’을 기록했듯, 이 작품 역시 명확한 해석을 거부한 채 이미지의 다층적 배열을 제시한다. 이미지들이 난무함에도 작품은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고 구성은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마치 이미지 중심의 영화를 보듯, 의미보다 시각적·감각적 인상이 먼저 다가왔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인형을 들고 나체의 남자가 춤을 추다 쓰러지는 장면은 특히 강렬했다. 이브가 죽은 것인가? 인류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러나 곧 부분 조명 속에서 꽃이 싱싱하게 자란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후반으로 갈수록 춤은 더욱 많아지고 움직임은 다양해졌다. 죽음의 축제인가? 해석의 층차는 무궁무진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움직임과 검은 천, 죽음의 그림자가 무대를 가로지른다.


이어 스크린이 내려오고 현실은 그 스크린 안에서 그림자로 펼쳐진다. 스크린 속 삶은 무대 위 현실과 겹치며 이중 구조를 만든다. 이후 스크린에서는 지구의 역사인지, 인간 생존의 역사인지 모를 장면들이 그림자로 빠르게 스쳐 갔다. 죽고 죽이는 장면들, 가위와 총, 톱, 가스와 최루탄 등 전쟁을 연상시키는 사물들이 등장한다. 인간과 인간의 격돌, 테이블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는 다이너소어를 닮은 해골이 놓여 있다. 이미지는 명확한 설명 없이 이어지지만, 인류의 역사와 폭력, 생존과 멸종을 암시하는 상징적 풍경은 강하게 각인되었다.


후반부, 스크린이 걷히고 우주의 행성들이 천천히 자전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의 이미지는 인간 중심주의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 식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인간은 기록을 남긴다. 아담도, 이브도 죽은 듯 바닥에 누워 있다. 월광의 피아노 선율은 애도처럼 공간을 채운다.


무대 위의 ‘Jason’은 단일한 영웅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존재의 그림자처럼 제시되었다. 상징과 오브제, 빛과 음악,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은 하나의 서사를 직선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파편화된 이미지로 축적되며 인류와 문명의 시간을 환기했다.


김경신은 마치 진흙을 주물러 형태를 빚어내듯 다양한 상징과 장면을 조형해 냈다. 그의 작업은 춤에만 매몰되지 않았고, 서사에만 기대지도 않았으며, 감정에 과도하게 침잠하지도 않았다. 대신 움직임과 이미지, 음악과 오브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관객의 호기심과 흥미, 기대와 감정을 동시에 자극했다.



그는 이미 ‘Jason’ 3부작을 계획하고 있다. 프로그램에는 그 대략적인 구상이 제시되어 있었는데, 치밀하면서도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성이다. ‘Jason’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질 이야기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인간과 우주, 자연은 인류 예술의 가장 근원적인 재료이며, 그 안에서 파생될 수 있는 서사와 이미지 또한 끝이 없어 보인다.


이 무대는 지역성을 넘어선 동시대적 언어로 작동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에 놓여도 흔들리지 않을 밀도와 조형 감각을 증명한다. 그리고 지금, ‘Jason’은 하나의 세계로 존재한다. 김경신은 그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창작자로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여정은 더 이상 가능성의 단계가 아니다. 이미 시작된 흐름이며, 앞으로의 무대를 통해 더욱 선명해지는 현재진행형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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