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Vol.126-1 (2026.2.5.) 발행
글·사진_ 장지원(춤평론가·본지 편집주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민족미학자 채희완 선생의 춤미학 세미나의 후기 연재를 통해 춤의 역사를 다시 쓰기보다 다시 읽는 비평적 시선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춤이 스스로의 언어를 되찾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한국춤을 어떻게 다시 말할 것인가?에 대해 채희완 선생이 진행한 ‘춤미학 심층연구’ 세미나 6편은 한국춤에 대한 역사를 전편에 이어 다시 살펴본다. 특히 제천의식에 담긴 의미와 성화, 장소성, 신명 등과 우리 춤의 굴신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춤의 특징도 언급했다. 이는 의례와 움직임을를 바탕으로 한국춤에 대한 이해를 돕고 한국인의 정서와 민족적 의식을 되짚는 과정이었다.
몸의 원류를 찾아서-제천의례와 공동체의 춤(2)
세미나 6편에서는 전편에 이어 제천의례와 공동체의 춤을 다뤘다. 선생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서는 제천의식과 삼한의 계절제 등 고대 사회의 축제와 제의에 관해 문구 해석, 당대의 사회상, 각각의 주체 및 시기와 특성들을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단순히 우리가 아는 대로의 추수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제만이 아니며 신도 천신만이 아니라 다양함을 언급했고 이번에는 문구 해석과 당시 사회적 배경을 함께 합쳐서 총괄적으로 상고대 제천의식의 현재적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 화두였다. 제천의식과 국중대회는 연결되어 있었는데, ‘국중대회’라는 표현은 부여·고구려의 제천행사에만 사용하고, 동예·삼한의 제천행사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 차이는 각 동이사회의 정치적 발전 정도와 밀접히 연관되었고, 정치적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동예·삼한에서는 읍락(邑落)이나 소국(小國)을 단위로 행해졌기 때문에 국중대회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왕을 정점으로 지배체제가 성립된 부여·고구려에서는 수도에서 대규모로 열렸기 때문에 이를 ‘국중대회’라고 표기했다. 제천은 하늘에 제례를 올리다, 신귀신은 귀신을 믿다, 사귀신은 귀신을 섬기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신귀신과 사귀신은 제사장이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무당 즉, 샤먼(Shaman)이 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거국적인 종교의례 행사 이외에도 제천의식이 일어나는 기간에는 형벌, 법률도 집행되고 정치·경제·군사·사법적 기능이 동시에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선생은 제천의식이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은 하늘중심 사상 그리고 밝음, 광명이라고 하는 중심사상을 볼 수 있음을 언급했다. 또한 샤만의 농경의례를 통해 춤의 근원을 살펴보면서 농사의 일과 제례의 굿과 일 끝난 후의 한판 노는 것이 한꺼번에 어울려있는 것으로 일놀이굿의 개념을 다뤘다. 이는 어쩌면 17-18C 초기 상업주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까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일, 놀이, 대부분의 굿 세 가지가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양상을 보임을 관찰한 부분이다. 그러나 17-18C 문화적 변동기를 겪게되면서 공적 의례가 아니라 인간에게 사회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행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놀이와 제례가 인간들 사이의 인간된 문제로 내용이 뒤바뀌게 되고 근대의식, 근대문화, 근대예술로 이행되는 실제적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확장된다.

제천의식에 나타난 집단적 신명
채희와 선생은 탈춤의 원천도 재판 놀이였고, 사흘 밤낮을 먹고 노는 제천의식은 집단적 신명의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문구를 통해 우리 민족이 무리를 지어 밤낮없이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내용을 확인했고 이것은 제례를 통해 경제력의 재분배, 음복을 통해서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 동시에 ‘하늘과 나는 동일하다’라는 왕권의 존엄함을 과시했다. 즉, 단순히 천신에 대한 제례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법 등 복합적인 기능을 스스로 확보하고 있었던 대규모 국가행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은 그렇다면 아프리카와 남미 지역을 춤과 노래의 땅으로 얘기하지만 우리의 땅 역시 춤과 노래의 땅으로 명명했고, 따라서 이 땅의 사람들은 배냇 소리꾼이고 배냇 춤꾼이며 배냇 연행예술가로 언급했다. 이는 중국의 여러 다른 종족과 다름을 결정짓는 결정적 단서가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성이고 우리의 의식이 벌어지는 현장은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집단신명의 현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화백이란 만장일치제도를 통해 오늘날 직접 민주주의 의사집결 방식, 경제불평등이 아니라 호혜평등의 시장, 접화군생의 풍류, 문예 현장을 통해 정치, 경제, 문화의 세 국면의 극치에 이른 제도로 보았다. 결국 화백정치, 신시경제, 풍류문화 이 세 가지를 제천의식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제천의식을 통한 일상의 성화
채회완 선생은 제천의식의 또 한 가지 성격적 의미를 일상의 성화로 보았다. 이는 일상적인 것의 거룩함으로 이때 거룩하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야말로 삶의 거룩함, 사람의 거룩함이 현실화 되어있는 모습이다. 일상적인 노동은 이제 놀이이고 굿이며 후대의 두레란 노동생산 조직원들의 모임이며 그 모임에서 하는 농사일, 의례, 놀이가 일상의 성화라는 이름으로 요약되었다. 그것은 신인일체의 경지이며 다른 말로 신명의 극치로 이해했고 제천의식의 현장에서 장소의 개념을 다시 사유했다. 우리 민족이 굿을 올리는 장소는 평소에는 그냥 일상의 공간이었으나 굿의 날짜가 잡히고 이것을 굿터로 하면 세속적인 땅이 거룩한 땅으로, 성스러운 땅으로, 거룩한 시간으로 이행된다. 굿터에서의 벌어지는 것들이 모두 거룩함 속에 이전되고 있는 좋은 예이며 따라서 우리의 굿터는 평소에는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굿터로 지정되면서부터는 일정 기간 성스러운 땅으로 바뀌는 과정을 겪는다. 그 성스러운 땅에서의 모든 인간적인 행위들은 성스러운 것으로 밝혀지니 일상적인 것이 거룩함으로 실현되는 곳이 굿터였다.
제례에서의 열린 마당성, 소도와 굿판
그는 전체적으로 제례에서 열린 마당성을 살펴보았고 열린 마당성은 소도라는 의미와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고찰을 필요로 했다. 소도란 무엇인가? 소도에서의 예술행위들이 예술의 기원을 이루고 있고, 거기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굿판이었다. 소도는 수두라고도 하는데 수두는 신당이었고 또는 솟대라고도 하는데 솟대는 새의 토템이었고 솟대 모양이 신호체계였다. 소도는 신의 영역인 동시에 신의 몸 그 자체이기도 하며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신의 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이었다. 그래서 요약하자면 소도는 삶의 터이자 의례의 터, 일상 공간이자 신성 공간, 일상의 성화가 벌어지는 곳, 모두가 모여들어 군취(무리지어 우리를 이뤄 모두가 참여하는)공간이자 역동적인 문화공간이었다. 선생은 유사한 예로써 미국의 미식축구 현장을 들었고, 음. 이 밖에도 하나의 현장의 경험은 반드시 미적현장, 미적경험, 미적사실이 생겨날 수밖에 없음을 언급했다. 하나의 경험 현장은 바로 미적체험의 현장이고 미적 경험의 현장 바로 그것을 우리는 하나의 경험이라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의미의 미적 장(aestetic field)이며 미래에서는 미적 현장(aestetic field)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미적경험의 과정을 예술로 보았다. 현대 예술은 문화 복합의 미적 필드에서 하나의 경험을 이루어내고 있는 일련의 과정이며 장치였다. 선생은 모든 예술은 굿판에서 시작된 것으로 언급했고 20C 초 영국의 민속학자 지인 해리슨의 『ancient art and ritual』 에서는 모든 문예물은 제의에서 나왔다라고 보았다.

춤용어 살펴보기
선생은 춤에 관련된 핵심적인 용어들도 살펴봤다. 구기상수란 작대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작대무는 일렬로 가다가 돌아 나오는 서클댄스, 라운드댄스에 해당한다. 답지저앙은 땅을 밟고 몸을 수그린다는 뜻으로 우리춤은 땅을 토대로 해서 하늘을 지향했음을 나타낸다.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동작에서 가장 원천적인 곳은 무릎이며 무릎을 굽혔다 폈다 굴신을 하는 것이 온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의 원천이 된다. 무릎을 통해서, 무릎의 굴신을 통해서 오금을 죽이고 돋음새를 놓는, 무릎에 의해 온몸이나 상체의 동작을 볼 수 있다. 덩실덩실이라고 하는 우리춤의 의태어가 바로 그런 모양에서 답지저앙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선생은 실제로 몸이나 무릎을 굽혔다 폈다를 실제로 관장하는 부위를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하단전의 자리이며 생명의 중심자리 혹은 한자로는 정미라고도 했다. 최근에는 회음혈까지를 얘기하는데, 이는 생명이 생성되는 곳임을 밝혔다. 또한 모든 움직임은 하단전 그리고 회음혈의 원천적인 작동 속에서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움직임의 원천을 얘기했다는 점에서 우리 춤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넓게 해석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이 실현되고 있는 모습이 디딤을 놓는 방식뿐만 아니라 다리를 들 때도 동일하며 제자리에서 굴신하는 것이 움직임의 원천인데 그것은 걷는 동작에서도 그대로 다 통하는 것이어서 디딤새의 모양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족상응은 말 그대로 손과 발이 서로 잘 맞는다, 손과 발이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잘 추는 춤을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한다. 두 번째는 손과 발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손춤과 발춤이 잘 어울리는 춤으로 그 의미를 볼 수 있으며 또한 무리 진 춤들이 잘 협화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뛰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걷을 때는 오른손에 외발이 나가고 왼손에 오른발이 나가지만 오른손이 들릴 때 오른발이 들리고, 왼손이 들릴 때 왼발이 들리는 것은 뛰는 동작을 이야기한다. 중국에서 춤의 분류 방식이 몇 가지 있는데 건무와 연무로 건무는 강건하다 할 때의 건과 유연하다 할 때의 연으로 강건한 춤과 부드러운 춤으로 대변하기도 한다. 열을 지어 추는 작대무가 있는가 하면 둥글게 하는 원무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사와 동사로, 왕이나 국가나 우주 운행의 질서나 하늘과 같은 것을 섬기는 수직적인 춤이 있고, 동사와 같이 서로 어울리고 친구처럼 지내는 동업자(friendship)의, 동사의 춤처럼 땅을 지칭하는 춤이 있다. 궁중무의 대부분이 사의 춤이라면 탈춤이나 풍물, 민속춤의 대부분의 춤은 동사의 춤이라 보았다.
세미나 6편은 채희완 선생이 전편에 이어 제천의식을 통한 일상의 성화, 제례의 열린 마당성을 바탕으로 우리민족의 춤을 이해하고 확장시켰다. 더불어 춤의 핵심적 용어를 통해 움직임의 원천을 실제 몸의 부위에서 설명하고 우리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춤까지 비교해 다뤘다. 이는 그의 포괄적인 지식을 통해 우리춤을 재해석하고 현재로 되살리는데 기여하는 뜻깊은 작업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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