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Vol.125-1 (2026.1.5.) 발행
글·사진_ 최해리(무용인류학자·본지 발행인)
댄스포스트코리아는 ‘민족미학자 채희완 선생의 춤미학 세미나’의 후기 연재를 통해 춤의 역사를 다시 쓰기보다 다시 읽는 비평적 시선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춤이 스스로의 언어를 되찾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한국춤을 어떻게 다시 말할 것인가. 채희완 선생이 진행한 ‘춤미학 심층연구’ 세미나의 3·4·5편은, 한국춤을 둘러싼 개념과 역사, 그리고 근대적 전환의 경험을 다시 읽어내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 연속된 회차에서 선생은 춤을 새롭게 규정하려 하기보다, 우리가 그동안 춤을 어떤 언어로 말해 왔는가를 근본적으로 되묻는다. 언어의 층위 속에는 사상적 기층과 역사 인식, 예술관의 방향이 함께 스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춤을 다시 사유한다’는 과제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사용되어 온 이름과 개념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그 의미를 다시 성찰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춤을 다시 말하기_ ‘무도·무용·춤’의 용어학
세미나 3편에서 중심이 된 것은 ‘무도(舞蹈)’, ‘무용(舞踊)’, ‘춤’이라는 서로 다른 명칭이 품고 있는 역사적 차이였다. 이 명칭들은 단순히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춤을 이해하는 관점과 인식의 틀을 형성해 온 개념적 장치였다. 고전 사료에서 확인되는 ‘악(樂)’ 개념은 노래와 몸짓, 놀이와 의례가 하나의 장 속에서 결합된 총체적 예술 구조를 보여 준다. 노래와 춤, 연희가 분리되기 이전의 시간 속에서 예술은 이미 공동체적 삶의 방식과 깊이 맞닿아 있었고, 그 총체성을 ‘악’이라는 언어가 담고 있었다. 채희완 선생은 이를 정체성의 본질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 구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기하며, 오늘날 장르로 구분된 예술 범주 이전의 ‘몸과 예술의 전체성’을 사유할 것을 요청한다.
이 지점에서 ‘무용’이라는 용어가 근대 이후 일본적 수용 과정을 거치며 정착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무’와 ‘용’ 각각의 어원이 지닌 움직임의 뉘앙스, 그리고 신문·출판 담론에서 이 용어가 자리 잡는 동안 ‘춤’이라는 고유한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변위되었는지에 대한 검토는,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춤을 규정해 온 인식사의 문제로 전환된다. 선생은 ‘춤을 다시 말하는 일’이 곧 ‘춤을 다시 사유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며, 개념의 정립이 학문적 엄밀함의 차원을 넘어 한국춤의 정체성을 되찾는 작업과 맞닿아 있음을 제시하였다.
몸의 원류를 찾아서_ 제천의례와 공동체의 춤

논의는 이후 고대 제천의례의 장으로 확장된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삼한의 계절제 등 고대 사회의 축제와 제의는 종교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결단과 사법적 판단, 군사적 동원과 경제적 재분배가 한데 얽힌 총체적 질서의 장으로 기능했다. 그 중심에는 늘 음주가무(飮酒歌舞)가 자리하고 있었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몸을 움직이며 하나의 질서를 재확인하고, 공동체의 연대를 다시 묶어 내는 경험을 공유했다. 여기서 춤은 단순한 오락이나 미적 표현을 넘어 공동체의 윤리와 세계관을 체현하는 행위였으며,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몸의 실천으로 작동했다.
채희완 선생은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춤의 ‘원형’을 찾는다. 그것은 동작의 형태나 안무의 기원을 추적하는 문제가 아니라, 몸이 공동체의 질서를 어떻게 감각하고 수행해 왔는지, 그리고 그 집단적 기억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잔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유이다. 한국춤을 예술 형식으로만 환원하지 않고, 공동체적 삶의 구조 속에서 읽어내는 관점은, 현대적 예술 범주 속에서 협소화되기 쉬운 춤의 의미를 다시 확장시킨다. 이 관점은 동시에 오늘날의 춤담론이 놓치고 있는 역사적, 인류학적, 의례적 층위를 다시 불러내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근대의 문턱을 다시 읽다_ 신무용과 식민지적 조건
세미나 후반부에서 다루어진 1920-30년대 ‘신무용’의 문제는 이러한 원류 논의와 긴장 관계 속에서 배치되었다. 신무용은 근대 예술적 감수성과 자유로운 신체 표현을 추구한 새로운 운동이었지만, 동시에 식민지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복합적 경험이었다. 채희완 선생은 이 시기를 무조건적인 예술혁명으로 낭만화하지도, 반대로 단순히 식민지 근대의 산물로 축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누가 그 시대의 문턱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예술가의 선택과 위치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남겼는지를 사료와 증언, 작품의 기록 속에서 차분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요청은 무용사 연구의 윤리적 방향을 분명히 한다. 근대기의 경험을 미화하거나 신화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기록과 증거에 근거하여 다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태도는 무용사 연구가 지녀야 할 기본적 책임으로 제시된다. 이는 오늘의 연구자와 비평가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와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짊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기록하기를 향한 질문

결국 이번 세미나의 3·4·5편을 관통하는 흐름은 ‘다시 이름 짓기’와 ‘다시 기록하기’를 분리하지 않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용어를 바로 세우는 일은 개념의 정립을 통해 사유의 토대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며, 원류를 추적하는 일은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발굴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록을 어떤 태도로 읽어낼 것인가를 묻는 윤리적 선택이다. 다시 말해, 이 연속된 논의는 한국춤을 새로 규정하려 하기보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언어와 관점으로 춤을 이해해 왔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채희완 선생이 던지는 질문은 현재형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무용’이라는 이름만으로 춤을 말할 것인가, 공동체적 몸의 기억을 어떻게 오늘의 춤 담론 속에서 다시 회복할 것인가, 근대기의 균열과 흔적을 어떤 기록 윤리로 마주할 것인가. 채희완 선생의 논지는 과거로 회귀하자는 요청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의 춤을 어떤 사유의 깊이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 제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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