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Vol.124-1 (2025.12.5.) 발행
글_ 김창수(경남문화예술회관 공연전시 담당)
사진제공_ 서울교방

전통춤, 동시대 관객과 어떻게 만나고 교감을 나눌 것인가. 이는 비단 전통춤 뿐 아니라 모든 공연예술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지향점일 것이다. 클래식이든 무용이든 음악이든, 예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베토벤의 음악이 오늘의 감각과 어떻게 조우할지, 클래식 발레의 수작들은 오늘의 우리와 어떤 방식으로 대면할지, 전통음악은 또 어떤 메시지를 남길지—예술가의 행위와 이를 맞이하고 해석하고 되새기는 관객 사이의 접점은 언제나 고민의 지점이다. 전통이 지닌 정형과 법칙, 예술적 가치의 담지, 그리고 시대 흐름 속에서의 변화 모습은 확장성으로 이어져 전통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한다.
2025년 기획공연 작품을 조사하고 선정하는 과정에서 서울교방의 ‘김경란류 권번춤 예맥: 반월’은 이러한 의미와 해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더구나 진주는 춘당 김수악 선생이 진주 권번의 예맥을 펼치고 후대에 남긴 곳이기도 하다. 작품의 이면에는 지역과의 연결고리, 그리고 그 속에서의 다양한 확장성과 관계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1년 여의 시간을 거쳐 2025년 11월 15일, 서울교방 도반들의 호흡과 디딤, 사위를 담아 여섯 편의 작품이 저마다의 맥을 품고 경남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랐다. 인트로 영상에서 꽃비가 날리고 그사이에 춤꾼 한 사람이 사위를 짓는다. 학이 날갯짓하며 날아오르고, 이어 장구와 징의 담박한 장단이 받치고 구음이 춤을 감싼다. <초무>에서 일곱 명의 춤꾼은 단아하면서도 섬세한 디딤으로 춤판의 시작을 알렸다. 새봄의 새싹과 연둣빛 움틈 같은 희망이 서주처럼 피어올랐고, <초무>는 상큼한 에피타이저와도 같았다.

<구음검무>는 선율 반주 없이 장구 장단과 구음, 그리고 두 사람의 대무로 구성되었다. ‘헛간의 도리깨도 춤춘다’라고 회자되는 춘당 김수악 선생의 구음을 새롭게 구성해 무대에 올렸다. 염불구음–타령–자진타령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진주 권번춤의 예맥을 응축해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검무 사위는 경쾌하고 거뜬했으며, 관객 또한 함께 거뜬히 호응했다. 이 지역에서 유유히 이어져 온 개천예술제의 감각이 겹쳐, 관객에게는 반가우면서도 새로운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무대는 깊이를 더해 <논개별곡>으로 나아간다. 시나위와 살풀이로 짜인 춤은 아련한 심연의 감성을 길어 올렸고, 의기 논개에게 바치는 헌무로 다가온다. 다섯 명이 함께하는 군무이지만 각 춤꾼의 서사가 살아 있어 군무이자 독무처럼 읽힌다. 이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로도 보인다. 춤이 인간이 표현하는 가장 원초적인 언어라고 할 때, 이는 추상의 언어로의 이해 또한 가능하다. <논개별곡>은 우리 춤의 원초적 추상 언어 위에 각자의 이야기 어법을 얹어 풀어낸 헌무였다. 이러한 확장성은 논개를 넘어 세상살이에 지친 모든 이에게 위무가 된다.


젓대 가락을 시작으로 가야금, 이어 아쟁의 현이 울린다. 새벽안개 드리우듯 아래에서부터 굿거리 흐름이 열리고,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이 오른다. 여기에는 정형의 틀은 보이지 않는다. 장단결을 따라 휘휘 저어 나가는 춤, 자진모리 장단에서 안개는 걷히고 춤은 겅중겅중 솟아 객석에서는 흥이 오른 추임새가 터져 나온다. 푸른 치마와 노란 저고리, 손에 든 소고는 스스로 신명이 나 휘리릭 돌고, 깨끼춤도 덧뵈기도 드러나며 장단과 노닌다.
오랫동안 봐온 승무는 독무다. 그러나 <춤49재: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에게>는 여섯 명의 춤꾼이 회심과 진혼을 드리는 공양처럼 구성되었다. 정가의 아정한 성음, 하얀 적삼과 붉은 띠를 두른 고깔은 생명의 본성에 닿아가는 승무의 의미를 허허로이 풀어낸다. 이어 대북의 울림은 시간의 흐름, 윤회, 역사의 사건들과 삶의 편린들을 드러냈다. 초두에 얽어두었던 다섯 색 띠를 소지하는 장면은 해원의 상징이자 ‘풀이’의 절정을 이루었다.
마지막 <민살풀이춤>은 동편제·서편제의 살풀이를 기반으로 조갑녀·장금도 명인의 맥을 참고해 재구성되었다. 액살을 풀어내는 데 가림은 있을 수 없고, 있는 그대로를 풀어내야 한다. 즉흥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심연에서 끌어올린 몸짓—그것이 바로 ‘풀이’다. 공연은 ‘내고–달고–맺고–푸는’ 전통의 법도와 순환 원리를 작품 전체에 배치했다. 여섯 작품은 각기 개별이면서도 하나의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총 여섯 작품으로 구성된 ‘김경란류 권번춤 예맥: 반월’은 컴필레이션 앨범과 같다. 전통춤의 다단한 특질과 미학, 형질과 가치를 각 작품에 녹여내고 다시 확장해 구성한 앨범이며, 공연 전체로도 하나의 완결을 추구하는 반월의 완성체였다. 그 가치는 관객과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공연이 끝난 뒤 김경란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니, “판이 성대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말은 오히려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초연 이후 1년 만에 오른 두 번째 무대이니, 앞으로 더 많은 동시대 관객과 만나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반월 세상을 만들고 있고, 어쩌면 만월의 이상향을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웃다리 농악의 <월산가>가 떠오른다.
아헤— 헤— 에헤—
오늘은 가다가 여기서 놀고
내일은 가다가 저기서 놀고
얼싸— 절싸—
놀러나 가세, 놀러나 가요
월산리 땅으로 놀러나 가세
얼싸— 절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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