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비평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5 지역공연 비평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포커스
Vol.124-1 (2025.12.5.) 발행
글_ 김혜라(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이 제작하고 김보라가 안무한 <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8.14., 세종시예술의전당)은 난임 여성이 보조 생식 시술 중 겪은 몸의 변화를 토대로 구성한 작업이다. 여성 몸에 관한 내용이나 무용수들은 여성성을 보이기보단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는 물질로서의 몸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의 형상은 독립적이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휩쓸리고 위태롭게 존재하는 비결정적인 몸의 상태를 드러낸다. 올록볼록한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은 비정상적인 살갗, 복수(腹水)로 가득 차 부풀어 오르고 멍든 몸통, 구토 같이 물을 바닥에 쏟아내는 행위가 낭자한 무대는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낯선 상황과 무대(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외부(의료 기기)에 영향을 받는 몸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무엇을 제시하고 싶은 것일까.

작품 제목 ‘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에서 물인 matter는 인위적으로 임신을 유도하는 물질들이 물의를 빚어내는 내 몸속 현장이다. 또한 의료 기술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며 겪어야 했던 안무가의 체험이기도 하다. 여성의 몸이 공간화되나 몸이란 영토는 약물과 기기에 잠식되는 전쟁터가 된다. 때론 상징적으로 때론 노골적으로, 역동적이고 말끔한 춤이 아닌 정상성에서 이탈한 움직임으로 꾸려진다. 이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무용수들은 통상적인 힘의 균형감에서 먼 동작을 주로 한다. 중심이 뒤편으로 쏠리기도 하고, 몸통은 기괴한 덩어리 같은 분투적인 형상들로 움직임이 진행된다. 어떤 의식을 체현하는 것이 아닌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의 흐름과 상황에 대응하는 양태가 가시화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을 해체하려는 신유물론은 인간중심으로 정의되었던 물질의 행위 능력을 재구성한다. 물질이 인간(의식)에 지배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저마다의 실재성과 행위성이 있기에 인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다. 신유물론적 관점이 녹아든 작품은 의식에 지배받는 몸이 아니라 몸과 정신의 위계가 해체된 물질적 존재로서 몸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를 토대로 김보라는 자기 체험에서 비롯된 의식의 지배와 무관한 몸의 성질 및 존재들을 촘촘하게 포착해 나간다. 스스로 반응하는 체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 이를테면 세포, 혈류, 호르몬 반응 같은 실체적인 물질들로 야기되는 몸의 변화에 주목한다. 시술과 약물에 노출된 저항할 수 없는 몸이 작품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의학적 잣대에 의해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저항 불가한 상태이며, 아픈 몸에 가까우나 질병이 아닌 상태인 난임 여성의 몸을 말한다.
이러한 안무 접근은 기술과 몸에 대한 상보적이거나 우열을 주장하는 시선(몸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기술에 맞서거나 정복되지 않는)과 달리 몸이 처한 다중적인 상황과 실태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관심에서 배제되었던 몸의 존엄이 닿지 않았던 특수한 상황에 놓인 몸에 주목하여, 우리 몸(생명)이 (의료 기술 환경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조명한다. 기술적 처지에 반응하는 몸속 물질들의 미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경험하며 정상도 비정상도 아닌 위치에 서 있는 물질로 이뤄진 몸들이 춤으로 조직되어 구체화 된다.

김보라는 3년 동안 난임 시술을 받으며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가고, 배아의 상태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특수한 의료환경에 놓인 몸을 비판적으로 톺아본다. 실패를 거듭한 여성의 몸은 구토와 어지럼증 같은 약물의 부작용도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환대받지 못한 대상이다. 실제 반복적인 시술로 인해 누적된 무기력과 상처를 복기하는 안무가는 자신의 경험을 길어 올려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전략적으로 취약한 몸을 전면에 내세우며, 몸에서 일어난 일을 낱낱이 들춰 보겠다는 안무가의 의도가 작품에 잘 투영되었다.
몸을 쓰고 몸으로 감각하고 사유하는 무용이나 임신 성패의 경계선에 선 여성이 겪는 고된 몸의 서사나 신체 담론으로는 다뤄지지 않았다. 아니 미처 보듬지 못했던 영역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의료 기술 도구들, 약물들, 의사와 같은 행위자들에 의해 통제받는 몸 그리고 그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의 행위를 춤으로 엮어 내었다. 시술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배회하는 대상이고 배제된 존재였음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건 이번 작품이 물질적 몸에 대한 담론을 실천하면서도 사회적인 시사점과 인간적인 울림이 있었다는 점이다. 공허한 구호가 아닌 한 여성 몸 존재성에 대한 깊은 숙고와 몸부림으로 다가왔기에, 우리는 소외되었던 여성 몸의 세계를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용도성을 잃은 강등된 난임 여성으로 생물학적 잣대로 재단 받는 대상이 아니라 취약한 있는 그대로 ‘몸의 존엄’이 무엇일지 안무가는 질문을 던졌다. 전력을 다하는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다 넓고 깊게 그리고 다양하게 보게 된다.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