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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희 기획 학술전시 <저고리와 토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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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3-2 (2025.11.20.) 발행


글_ 김수인(무용이론가)

사진제공_ 댄스브릿지



날씨 좋은 토요일 오후 북촌의 거리는 관광객과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전시 장소로 향하는 내내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마주쳤다. 한국의 전통 요소와 세계화의 욕망이 교차하는 지역에서 <저고리와 토슈즈>라는 전시가 열리는 행사장을 찾을 수 있었다. 


<저고리와 토슈즈>는 춤비평가 정옥희가 기획한 학술적 전시이다. “1980년대 대한민국무용제와 한국적 발레”라는 부제를 단 이 전시는 11월 6-9일 북촌에 자리한 공공한옥 놀이터에서 열렸다. 위치와 장소부터 이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레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토슈즈를 신도록 훈련된 몸에 저고리를 입는다는 것은, 혹은 반대로 저고리에 익숙한 몸이 토슈즈를 신고 춤춘다는 것은 어떤 욕망의 발현인가? 이번 전시는 세계화의 열망에 휩쓸리던 1980년대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와 무용계 조직, 그리고 개인의 사적 역사를 씨실과 날실로 엮어낸 전시였다. 그리고 전시 공간은 그러한 얽힘을 몸으로 체험하여 다시금 주제를 곱씹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옥의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소담한 정원이 보이고 곧이어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나무 마루로 올라선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마네킹에 입혀진 발레 <심청>의 의상과 3켤레의 토슈즈이다. 전시 제목인 <저고리와 토슈즈>를 구현하는 이 전시물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텍스트와 이미지, 사운드, 영상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이 나온다. 처마를 따라 늘어뜨려진 족자들과 그 틈새로 보이는 정원의 대나무가 한국적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곧 나의 관심은 족자며 카드에 써진 텍스트로 옮겨진다. 학술적 전시다 보니 전시 공간의 많은 부분은 역사적 사료에서 발췌한 텍스트가 차지했다. 기획자가 방대하고 꼼꼼하게 수집한 신문, 잡지 및 그 밖의 문헌 자료들에서 인용한 문구들이 적힌 카드가 시대별로 매달려있다. 좀 더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면 엽서나 사진이 붙어있고, 가장 안쪽에는 당시 대한민국무용제에 출품된 무용 작품과 안무가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기획자는 이 전시 관람을 가이드하는 “배회를 위한 다섯 가지 열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극장국가, 대한민국무용제, 창작춤, 동문무용단, 그리고 한국적 발레. 발레와 춤을 국가, 정치, 사회, 제도, 기관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연구 관점이 잘 드러나는 키워드들이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 올림픽게임으로 본격적으로 외국의 시선과 만나는 행사를 통해 ‘한국’을 세계의 일원으로 소개하겠다는 국가의 정책 속에서 동원된 춤, 그리고 그런 거대 담론 속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한 대한민국무용제가 추동한 ‘민족’과 ‘창작’의 경향, 이 메커니즘에서 주요 역할과 기능을 담당한 대학 중심의 무용계 재편과 동문무용단, 이런 맥락에서 추구한 ‘한국적 발레’의 양상이 기획자의 방대한 사료 조사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디스플레이 되고 있다. 학문적 경향으로 따지자면 예술 작품 내부에만 집중하기보다 그것을 사회학과 문화연구의 관점으로 살펴보는 비판적 무용학의 양상을 띤다. 그래서 안무의 분석이나 구체적 작품 요소로 깊이 들어가기보다 춤의 의미가 직조되는 거시적 매트릭스를 보여주는데 더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시의 묘미는 그 거시적 매트릭스를 실증적 자료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철저히 사적이고 몸적인 차원이 사료의 질감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전시의 이해를 돕는 리플렛을 보면 기획자 자신이 유니버설 발레단원으로 활동할 때 <심청>을 공연하며 가졌던 호기심이 이 전시의 동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입구에 있는 <심청>의 의상은 2000년대 초반 안지은 무용수가 입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정옥희 기획자가 SNS에 밝힌 말에 의하면 “몸통이 얼마나 얇은지 44사이즈 마네킹에게도 안 맞아서 마네킹을 구하느라 혼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전시 의상은 그저 “한국 발레”에서 국가 한국을 상징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춤추는 몸에 요구되는 ‘뼈마름’의 미학을 드러낸다. 그리고 함께 전시된 3켤레의 토슈즈는 기획자 자신이 중국발레단에서 활동할 때 사용했던 것을 포함해 개인적으로 신을 용도로 구한 것들이어서 개인의 발레 역사와 한국의 발레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획득할 수 있었던 물적 자원(이 시점에 어떤 브랜드의 토슈즈를 구할 수 있었나?)을 확인하게 해준다. 또 유리창과 벽에 부착된 사진과 포스트 등 이미지 자료 옆에는 기획자가 형광 초록색 포스트잇에 직접 쓴 글씨로 자신의 해석과 감상을 볼 수 있다. 이 이미지 자료에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산에서 부채춤을 추었던 사진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기획자는 외국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한 ‘극장국가’에서 ‘동원된 몸’이었던 경험을 끄집어낸다. 관람자로서 나는 곳곳에서 기획자의 몸의 흔적을 느끼며 동시에 나의 움직임 속에 묻어있는 거시적 매트릭스를 통찰할 수 있었다.



이날 나의 관람은 구술인터뷰 참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들려주는 차담회 시간을 포함하였는데, 박인자, 신정희, 조윤라 안무가 중 앞의 2분이 참석하여 대한민국무용제에 출품한 자신의 창작발레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으며 현실적인 고민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이렇게 시대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자칫 후대가 가질 수 있는 편견, 즉 80년대 창작발레는 어떤 것이다라고 하는 고착된 이해를 넘어, 땀 흘리며 애쓰는 사람의 살아 숨 쉬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다른 관람자들도 이 전시를 풍성하게 하는 구성요소였다. 각기 다른 시간선에서 다른 입장으로 한국의 발레 역사에 관여해 온 관람자들은 전시된 자료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췌된 신문 기사가 안내하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공연을 기다리며 어떻게 설레는 마음을 가졌는지, 세종문화회관 3층 꼭대기 객석에서 바라본 발레리노의 정수리 탈모가 어떻게 보였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를 통해 전시된 사료들이 생생한 몸의 경험으로 번역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어떤 순간에는 장판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의 발레하는 몸이 가진 아비투스를 읽을 수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발레 테크닉을 몸에 익히기 위해 풀업(pull-up)을 장착하면서도, 결국 장판 바닥으로 내려앉아 옹기종기 모이는 몸은 현실적인 한국 발레의 몸 경험이다.




이번 전시는 정옥희 기획자가 발레 무용수, 연구자,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한국에서 발레하기’를 고민해 온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미 2005년 “<심청>에 나타난 '한국적 발레'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라는 학술 논문(무려 49페이지!)에서 표출된 기획자의 질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고민을 이번에는 논문이나 글 대신 전시라는 새로운 형태로 발표하고 공유하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학술 전시의 형태는 최근 몇 년간 활발해진 경향인데, 이번 <저고리와 토슈즈>는 더 개인적이고 몸적인 차원이 두드러지며 관람객의 움직임을 가이드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안무적 장치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시를 가능하게 했던 서울문화재단의 RE-SEARCH 지원 사업에 대한 성찰도 언급되었다. 차담회에 참석한 장광열 평론가는 이번 기획 전시의 의의를 언급하면서 무용계에서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제2의 창작의 방향을 제안했다고 논평했다. 아카이빙과 아카이빙의 공유 방식이 창의적 접근이 필요한 작업이며, 무용계나 지원사업에서 창작의 다양한 형태가 인식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지원 방향의 성찰에 동의하면서, 이것이 제도가 이끄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용계의 개인들의 인식 변화 없이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표면의 겉모습만 바뀌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도 되었다. 개인과 사회의 얽힘을 역사로 읽어낼 수 있는 리터러시, 예술과 일상을, 몸과 텍스트의 얽힘을 읽어낼 수 있는 리터러시를 함양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되돌아보고 교육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수십 년간 비판되어 온 실기 전공 삼분법이 여전히 공고하게 작동하는 한국의 제도에서 발레하기란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다. 그 의심이 좌절이 아니라 생산적 질문의 토양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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