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춤과 사람들> 2026년 3월호와 동일한 내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공연비평
Vol.127-1 (2026.3.5.) 발행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Sang Hoon Ok

제18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중 발레작품의 하나인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예술감독 백연)의 〈MELTING〉이 2월 12-14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관객을 기후위기의 참여자로 이끈 공연에서 백연은 빙하의 아름다운 녹아내림 이면의 아우성 소리, 우리가 바라보는 빙하의 고요한 녹아내림을 모티브로 자연의 시선으로 보면 녹는 행위가 오히려 아우성과 절규가 뒤섞인 쓰나미로 다가온다는 주객전도의 시각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여기서의 주객전도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인 자연 또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안무자 백연은 그간 창작발레의 작업이 힘든 장르적 특성과 한국의 발레계 현실을 마주해서 독특한 개성과 열정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창작발레화에 크게 기여해왔다.
이번 〈MELTING〉에서는 작품 초반부에는 대중성을 고려해서인지 극적인 요소를 담아 위트있게 처리했고, 객석 한편에는 빙하의 녹아내림을 현실적 이미지로 제시하는 설치물을 배치했다. 또한 무용수들이 관객석에 섞여 함께 반응하는 등 일면 이머시브 공연의 형태를 띠며 다양한 연출에 주력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작품 전반을 통해 외적으로는 고요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자연의 파괴의 과정을 그녀 특유의 신체 어휘로 구현했다. 〈MELTING〉은 환경 위기를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빙하의 녹아내림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인간이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녹아내림과 실제 빙하가 겪고 있는 물리적·시간적 변화에 따른 녹아내림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함을 되새겨본다. 그녀는 스스로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생태미학이 지향하는 바, 자연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공존하는 존재로 재인식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따라서 작품은 녹아내림을 단순한 소멸이 아닌 ‘관계의 변화’로 제시했고, 얼음이 물이 되듯, 인간의 시선 또한 변형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포하며 표현은 무겁지 않지만 주제는 깊이있게 다가왔다.


백연은 늘 융복합적 특성을 작품에 담았는데 〈MELTING〉에서는 마임리스트 류성국, 얼음조각 퍼포먼스팀 IceWings와 협업했고, 11명의 무용수들(강미호, 김정하, 김은정, 나정운, 박민지, 배민지, 이근희, 이현섭, 이도연, 장원진, 조현희)이 출연해 현대적 움직임과 오브제, 공연현장이 어우러져 입체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감각적이고 추상적으로 풀어내면서 단순한 환경 문제의 재현을 넘어,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 인식의 한계에 동시대적 성찰을 가했다. 이번 무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얼음조각 퍼포먼스와 마임의 적극적 도입이다. 얼음은 작품의 핵심 모티브인 ‘녹아내림’을 물질적으로 구현하는 오브제로 기능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상태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다. 이는 무용수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병치되며, 물질과 신체가 동일한 시간 속에서 변화한다는 점을 강화했다.
〈MELTING〉은 무대 위 발레동작에만 국한되지 않고 해체된 움직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는 사라짐과 공존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동시에 부각시키는 가운데 그간 그녀가 보였던 실험성이 돋보이기도 했다.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녀의 노력과 열정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었고 무용수들의 군무상의 구조 역시 비대칭적으로 이뤄져 역동성을 강화했다. 다만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함몰되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성이 모호해진 측면이 없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럼에도 〈MELTING〉은 컨템퍼러리발레로 발전해가는 변이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가하는 태도와 현 사회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이 그녀의 장점임을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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