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서울문화재단 비평활성화지원 시범사업 일환으로 작성되었으나 일부 내용이 변경되었습니다.
공연비평
Vol.126-2 (2026.2.20.) 발행
글_ 염혜규(춤평론가)
사진제공_ 위보라 알에이컴퍼니

<격 隔_다른 사이의 그것, 숨 (이하 숨)> (2025.11.15-16.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함을 던져주는 제목이다. 제목에 표기된 한자어 ‘隔(사이 뜰 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격’은 무엇과 무엇의 ‘사이’, 혹은 ‘간격(間隔)’을 의미한다. 한편 '숨'은 '호홉'을 뜻한다. 바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쉬다’의 그 ‘숨’이다. 격은 공간적이고 숨은 시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숨> 은 이 두 가지를 씨줄과 날줄로 엮듯 춤의 언어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전작인 <격>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영감을 받아 곡에 나타난 '탄생', '희생', '소멸'을 인간의 삶과 자연의 순환으로 그려내었다. <숨>은 바로 <격>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성한 춤" 을 발전시킨 작업이다(프로그램 참조).
“신성한 춤”은 1913년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의 제2부의 마지막 곡이다. “선택된 처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로 선택된 처녀에 관한 곡이다. 이 곡의 중요한 의의라면 제의가 갖는 원시성을 불규칙한 리듬과 불협화음 등의 음악어법으로 구현해 냈다는 데 있다. <숨> 또한 서사의 전달이 아닌, 제의식 자체에 주목하고 한 작품이다. 안무가 위보라는 반복되는 리듬과 몸짓 속에서 정화를 탐구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호흡’에 집중하고 있다. 생명은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힘이다. ‘sprit(영혼)’, ‘inspiration(영감)’ 역시 ‘호흡하다’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호흡은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리듬”이다(프로그램 참조).

<숨>은 얼핏 보기에 스트라빈스키의 “신성한 춤”과는 여러모로 거리가 먼 작품이다. 예를 들어 스트라빈스키의 “신성한 춤”은 투티(tuti)로 강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투티는 연주에 참여하는 모든 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는 연주법이다. 여기에 팀파니, 피콜로, 트럼펫 등의 악기의 특색이 더해져 희생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반면 <숨>은 무용수의 춤에서도 음악에서도 강렬함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춤은 일사불란한 군무 등과는 거리가 멀다. 느림, 멈춤의 순간들이 공연 초반부터 시작하여 전반에 스며있다. 음악 또한 일정한 리듬이 느슨하게 반복되는 곡들로 구성되었는데, 호흡처럼 작품 전반에 휘감고 있다.
공연은 뚜렷하게 장으로 나눠진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크게 전반부와 오브제가 들어오는 후반부로도 나눠볼 수 있겠다. 다양한 공간의 구성을 보여주는 격과 숨이 직조되는 시간과 숨 자체에 집중하는 전반부와 사물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격과 숨의 공간이다. 각각은 다시 두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초반부의 구성이 공연 뒷부분에서 변주되는 형태의 구성을 띄고 있다. 공연에서 무용수들은 남녀 모두 동일한 황톳빛 의상을 입고 있다. 땅의 색이랄 수도 있는 황톳빛은 제의의 성격을 단순화하며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반부에서 6명의 무용수는 특징적인 하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무용수들은 마치 발과 무대바닥 사이에 자기력(磁氣力)이 작용하는 듯 바닥에서 발을 떼기가 무섭게 바로 땅으로 떨어지듯 움직인다. 때로는 제자리 걷기를 하듯 앞이나 뒤로 움직이는데, 발에 추를 달아놓은 듯 하체의 움직임에 힘이 실려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종종 무릎을 거의 굽히지 않고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은 허리가 꺾일 듯 상반신을 크게 회전시키거나 때로는 팔까지 완전히 뻗은 채 몸통 전체를 돌리듯 움직여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웨이브와는 대조적이다. 직선과 곡선의 예기치 않은 교차와 부딪힘은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룬다. 또한 몸 전체로 숨 쉬는 듯한 정형화되지 않은 움직임이 주는 자유로움은 하체의 무거운 움직임으로 인해 격렬하다기보다는 견고하다는 인상을 불러온다.
2, 3명씩 무리 지은 무용수들은 동시에 각각 다른 동작을 하며 무대 위로 복수의 공간을 형성한다. 그룹 간에 움직임의 방향이 격자로 엇갈린다거나 서로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등의 다양한 구성이 형성된다. 무용수가 과장된 몸짓으로 무대 뒤에서 객석을 향해 걸어 나오면, 무대 상수에 있던 다른 무용수들이 상수를 향해 움직이는 식이다. 혹은 두 무리가 무대 앞뒤로 나눠 병렬 구성으로 각각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무작위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공간들의 간격들 위로 춤이 만들어내는 호흡의 리듬이 펼쳐진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일관된 순서나 규칙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무질서한 움직임의 난장 또한 아니다. 무용수들은 섬세하기보다는 단순한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데, 다양한 움직임의 방향 변화와 공간 배치가 단조로움을 상쇄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반복되는 리듬 속에 들숨과 날숨의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무용수들은 갑작스레 움직임의 속도를 바꾸며 흐름에 변화를 준다. 두 배속으로 돌린 필름처럼 아주 천천히 움직이다가도 갑자기 빠른 움직임으로 전환된다. 변칙적인 움직임은 스트라빈스키가 보여준 복잡한 변박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순간 한 명의 무용수가 발에서부터 시작된 호흡이 온몸을 관통하듯 상반신을 위로 끌어 올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온몸으로 살아있음의 증거인 호흡이 바로 생명의 리듬이라고 알리는 듯하다. 한 명씩 무용수가 추가되며 일렬로 선 네 명의 무용수는 비슷한 움직임으로 온몸으로 하는 호흡을 보여준다. 각각 무용수 간 움직임의 시간 차이로 호흡의 흐름이 파도타기를 하듯 펼쳐진다. 숨을 쉰다는 자체로 춤이 되는 순간이다.
공연 중반부에 이르면 철제구조물을 통해 숨 쉬는 생명체인 인간과 사물 사이의 격을 통한 숨을 보여준다. 철제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정육방체의 구조물을 중심으로 무용수들이 움직이다 어느 순간 구조물을 해체하여 무대 위를 떠난다. 이때 프레임이 해체되어 사라질 때까지 프레임 앞에서 한 명의 무용수가 다양한 동작을 구사하며 춤을 춘다. 마리오네트를 떠올리게 하는 다소 경직된 듯 부자연스러움 움직임은 무용수 뒤의 철제 프레임과 중첩되며 정서의 환기를 불러온다. 어둠 속에 울려 퍼지는 타악기의 서늘한 울림과 프레임의 차갑고 날카로운 물성이 맞닿아 있는 가운데 숨은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격은 사물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된다. 공연 후반부에서 반짝이는 반투명의 막이 무대 중앙을 축으로 내려오면 무대는 앞뒤 공간으로 나눠진다. 막 뒤에서 움직이는 무용수들이 비추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격이 수직으로 시각화된다고도 할 수 있다. 공연의 마지막에 이르면 천장에서 넓은 비닐 여러 장이 무대높이의 절반쯤까지 내려온다. 무용수들의 머리 위로 수평의 또 다른 격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한편, 조명이 비친 막이 화사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독무는 아스라이 사라지는 숨결을 보여주는 듯하다. 무용수는 아주 천천히 동작을 취하다, 때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숨결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조명이 바뀌면 빠르고 느린 움직임이 교차 되지만 여전히 정지의 순간을 머금은 무용수의 움직임은 느슨하게 다가온다. 느린 호흡의 물결은 그 자체로 간격을 만들며 무대를 뒤덮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위보라가 보여주는 방식은 단순하다. <숨>은 인간(생명체)이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용수들은 공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온몸으로 보여주는 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숨>이 갖는 보다 큰 의의는 움직임의 반복과 속도 차, 공간 구성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숨을 시각화해 낸다는 데 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성이기도 하다. 음악이 소리로 표현되는 언어라면, <쉼>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시각화된 음악을 보여준 무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스트라빈스키의 “신성한 춤”이 선율과 화성의 조화가 아닌 음향효과에 집중하여 제의의 원시성을 드러냈듯, <쉼>은 격과 숨으로 상징될 수 있는 다양한 공간 구성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생명의 숨결”, 그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춤으로 구현된 숨이 음악처럼 무대 위로 울려 퍼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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