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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땅에서 부터 시작하는 춤: 시나브로 가슴에 〈Earthing〉

※ 서울문화재단 비평활성화지원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된 리뷰임.

공연비평

Vol.125-2 (2026.1.20.) 발행


글_ 염혜규(춤평론가)

사진_ 황선하



Earthing(어싱)은  Earth(땅)과 -ing(현재진형행)의 합성어로 사전적 정의로는 ‘땅에 닿음’ 혹은 ‘땅에 댐’을 뜻하는 ‘접지接地'이다. ’맨발로 땅을 밞는다’ 는 뜻으로도 통용되며 걷기운동으로도 알려져 있다. 땅을 밞음으로서 지구와 몸이 하나로 연결되고, 땅으로부터의 에너지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다. 시나브로 가슴에의 〈Earthing〉 (2025.7.3.-7.6,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안무가 권혁에게 땅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땅에서 시작하고 성장하며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인간 행위의 모든 근원적인 에너지 역시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더 나아가 자연의 일부인 인간 역시 땅을 통해 모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마치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이 비를 맞고 태양 빛을 받을 뿐 아니라 땅속 흙의 여러 미생물의 작용으로 성장하듯, 자연은 하나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 〈Earthing〉은 바로 땅을 기반으로 자연과 연결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무대 위로 구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Earthing〉은 그 자체로 시나브로 가슴에의 성격과 닮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나브로 가슴에는 ‘속도(SPEED)', '기본(BASIC)', '몸(BODY)'을 단체 작업의 큰 키워드로 일종의 수행 춤을 지향하고 있다. 무용수들의 각기 다른 몸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생각과 움직임을 공동작업을 통해 하나의 것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Earthing〉 또한 인간을 비롯한 자연 속 수많은 다양한 개체들이 개별적이면서도 서로에게 연결돼 있음을 무대언어로서 보여주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접지”의 과정이 무대 위로 펼쳐진다. 어둠 속으로 주황빛의 조명이 비치는 아래 7명의 무용수가 좌선하듯 책상다리 자세로 둥글게 모여 앉아 있다. 광활한 우주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저음이 크게 울려 퍼지고 무용수들은 상체를 천천히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은 채 상체만 미세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한쪽 다리를 굽혀 발로 원을 그리듯 무대바닥을 흩기도 한다. 때로는 몸을 뒤로 뉘인 채 양다리를 위로 들어 올려 양옆으로 왔다갔다 움직인다. 동작이 조금씩 변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반복적인 움직임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몸의 여러 부위가 땅(무대바닥)과의 접촉을 통해 땅의 기운을 받듯 동작은 점점 커지고, 다양한 움직임이 더해진다. 앉은 채로 큰 원을 그리는 상체의 움직임을 따라 팔 또한 함께 원을 그리듯 돌려 움직이는 식이다. 때로는 앉은 자세에서 상체만으로 웨이브를 만들어내며 절을 하듯 움직인다. 천천히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움직임들은 공기를 몸에 품은 듯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느린 움직임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흐름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음향 속에 더욱 극대화되며 땅의 에너지로 무대공간을 채우듯 하다.


쿵쿵거리는 음향이 더해지며 몸의 움직임 또한 보다 힘 있고 절도있게 변해간다. 무용수들은 땅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듯 몸의 상반신과 양팔을 위로 움직이며 수직적인 움직임을 반복한다. 드디어 무용수들이 일어서며 느슨한 움직임 속에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반복하며 무대 위를 천천히 돈다. 검푸른 빛의 어둠 속으로 스모그가 깔리고 감미롭고도 몽롱한 분위기의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진다. 모든 동작은 유기적인 흐름 속에 이어지며 신비로운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보여주듯 갑자기 무대 위로 비가 내리고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무용수들은 마치 빗속의 숲길을 걸으며 자연과 공명하듯 변함없는 속도로 천천히 걷는다.




어느덧 인간의 근원을 찾아 떠난 어싱의 여정이 종착지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둣 분위기는 반전된다. 주홍빛 조명이 천장에서 무대 가운데로 수직으로 떨어지고 둥글게 선 무용수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앞뒤로 흔든다. 타악기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움직임의 속도 또한 빨라진다. 무용수들은 팔을 양옆으로 혹은 앞뒤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원을 넓혀간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속도와 반복만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해 낸다. 마치 땅의 기운을 상징하듯 무대 전체를 주홍빛 조명이 뒤덮고 음악과 무용수들의 움직임 모두 가속도가 붙으며 격렬해진다. 무대는 황톳빛 땅의 기운 속에 제 의식을 치르는 듯 주술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자연과 합일되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을 문명 이전 원시성의 회복을 통해 보여주려는 듯한 시도다.


공연은 무용수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하듯 머리를 땅에 대고 손으로 허리를 받쳐 다리를 위로 향해 들어 올린 채 끝난다. 맨발로 땅을 밟는 어싱이 머리를 땅에 대는 접지로서 끝나는 설정은 땅의 에너지를 통해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갔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Earthing〉은 반복과 속도의 제어를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연결되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흐름과 에너지를 춤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지난한 수행의 과정을 무대 위애서 구현해낸 어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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