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5-2 (2026.1.20.) 발행
글_ 이상헌(춤평론가)
사진제공_ 한국춤 프로젝트 가마

지난 12월 21일, 22일 일터소극장에서 공연한 한국 춤 프로젝트 가마 5th Project ‘춤 EASY 展’ <이웃 기웃>은 ‘단절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외면하며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성찰하는 세대별 춤 에세이 프로젝트’다. <이웃 기웃>은 서로가 이웃이지만, ‘공동체의 온기가 사란 진 시대에 다시 사랑과 이웃의 의미를 춤으로 되묻겠다’라고 한다. 작품은 안무자 세 명이 각각 청년, 중년, 노년 세대를 맡아 각 세대의 존재 의미와 상실의 원인을 짚으면서 각각의 긍정적인 면을 제시한다. 청년 편은 배은채 안무 <벼랑 끝에서>, 중장년 편은 한지은 안무 <버티-고개>, 노년 편은 류현정 안무 <할미 야류>로 구성했다.
이웃은 본질적으로 ‘곁에 있는 타자’이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식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앞에 나타난 ‘타자의 얼굴’이다.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은 나의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먼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호출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 ‘기웃’은 그 호출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작고도 구체적인 몸의 동사, 즉, 살피고, 기울이고, 가까이 가는 일로 읽힌다. 이제 그 ‘기웃’은 청년에게는 문 앞의 현기증으로, 중년에게는 하이픈의 숨표로, 노년에게는 객석을 향한 돌출로 나타난다.
배은채 안무 <벼랑 끝에서(On the edge)>(출연 최진수, 박지원, 오예원, 배은채)
‘함께여서 더 외로운 청춘, 닫힌 문 앞에서 건네는 위로의 춤사위’
조명이 들어오면 무대 오른편(상수) 안쪽에 나무 계단이 보인다. 긴장감을 높이는 기계 소리 같은 날카로운 소음이 들리고, 붉은 조명 아래 세 명이 검은 옷을 입고 누워 있다. 계단에서 뒷걸음으로 천천히 한 사람(청년)이 내려온다. 청년은 이 시대 보편적 청년상이다. 검은 옷차림의 세 명은 청년의 확장된 자아이며 청년을 옥죄는 현실과 타자와의 관계일 수도 있다. 세 명의 얼굴이 천으로 가려져 있는 부분, 세 명이 각자의 계단을 올라 닫힌 문 앞에서 좌절하는 등 청년과 세 명의 분명한 상징과 역할 대비 때문에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관객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장치와 조명, 음향을 활용하는 연출이 정교하고, 주제를 전달할 때 불필요하게 에둘러 가지 않았다. 작품은 청년 세대의 상황 묘사에 그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며 공감과 연대를 꾀한다. 그 질문은 ‘왜 우리는 함께 있어도 외로운가’이다.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은 어쩌면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틀이 해체된 자리에 자기 증명의 책임만이 크게 남겨진 상황에서 오는 현기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희망적 결론은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까. 작품 마지막은 청년이 뒷걸음으로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가 미지의 문을 여는 장면이다. 비록 이웃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불안과 외로움 때문에 힘들었지만, 타자와의 관계라는 미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바로 그것이 청년 세대의 불안을 떨칠 희망의 발걸음일 것이다.

한지은 안무 <버티-고개>(출연 김나영, 조아영, 한지은)
‘유예된 자아를 깨우는 숨표, 타인의 버팀목에서 스스로의 언덕으로’
한지은은 “작품 속 ‘버티고개’는 실제 장소이자 은유다. ‘밝은 고개’라는 뜻이자 ‘견딤의 언덕’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가족과 사회의 중추적인 ‘버팀목’이자 ‘비빌 언덕’으로 살아온 중년세대의 ‘유예된 자아’를 춤으로 풀어내 비로소 스스로에게 버팀목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작품은 ‘버티고개’라는 고유명사 사이에 하이픈(-)을 삽입함으로써, 견고한 장소성을 유연한 ‘버티-기’의 시간으로 치환한다. 이 짧은 가로획은 타인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잠시 멈춰 세웠던 자아의 ‘숨표’이자, 자신을 향해 뻗어나가는 새로운 생의 이정표가 된다.
치마 아래가 넓은 흰옷을 입고 그녀(한지은)가 큐브 위에 서 있다. 비례가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리 두 개가 쑥 나온다. 한 사람의 아니었다. 다리가 들어가더니 조금 지나 두 명이 치마 밖으로 굴러 나온다. 출산인 것 같기도 한데, 분명하지는 않다. 두 사람이 나오고 그녀가 큐브에서 내려오자, 큐브가 두 개임이 밝혀진다. 작품의 상징 장치인 폭이 넓은 흰옷, 치마에서 나온 두 사람, 두 개의 큐브가 가족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유예해 온 중장년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한지은은 상징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이미지 활용과 춤을 놓치지 않았다. 작품 후반부에서 두 사람이 그녀의 옷으로 다시 들어가 그녀의 옷을 입으면, 그녀는 옷에서 천천히 기어 나온다. 살짝 벌려 놓인 큐브 사이에서 물구나무를 섰을 때, 허공에 들린 두 다리 사이로 뒤편에 그녀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좁은 공간이지만 이 장면에서 묘한 깊이가 느껴진다. 이 깊이는 자기 삶을 유예해야만 했던 이유와의 거리이다. 드디어 큐브 위에 서서 큐브를 끌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큐브는 자기의 기반으로 여겼던 상황들이다. 이제 그것들에서 내려와 느리지만 깊은 춤을 추고, 기어이 그것들을 밟고 선다. 20분이 채 안 되는 시간과 좁은 소극장 공간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지은은 조밀하면서 깊이 있는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었다. 그뿐만 아니라 춤의 확산과 템포를 잘 조절해 작품의 품격을 높였다. 한지은의 말처럼 ‘이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제3막의 춤을 시작’하는 순간을 보여 주었다.

류현정 안무 <할미 야류>
‘오래된 얼굴이 건네는 유쾌한 위로, 세대의 경계를 허무는 익살과 해학’
이 작품은 수영야류, 동래야류,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등 탈춤에서 빠지지 않는 ‘할미 과장’의 주인공 할미를 모티프로 삼았다. 탈춤 속 할미는 남편인 영감과 첩인 각시 또는 덜머리와의 삼각관계에서 피해를 보는 인물이다. 고단하고 가난한 서민 여성의 삶을 대변하며, 그들의 억눌린 감정과 한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는 할미를 초고령화 시대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고독한 노년을 가엽고 약한 존재로만 보지 않고, 그 고독의 이면에서 서로 돌며 살아가는 작은 연대의 힘을 발견한다.
작품 모티프를 탈춤에서 가져왔지만, 탈춤의 할미 서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주역 할미인 것 같은 한 사람과 세 명이 나오는데, 모두 할미다. 이 넷의 관계 설정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모두 할미다. 이 작품의 장점은 춤과 구성의 공간 사이에 틈이 다른 두 작품에 비해 넓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관객은 무용수 각자의 움직임과 호흡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춤사위도 기존 탈춤 사위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는데, 몇 장면에서는 문둥춤 사위도 잠깐 엿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자유롭게 모티프를 소화하고 안무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작품은 후반부에서 갑자기 조명이 전환되며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다. 객석에서 조끼를 건네받고 선글라스를 낀 채 '강남스타일'을 추는 '힙한 할미'들의 등장은 관객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반전이 다소 돌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전환을 뒷받침할 정서적 전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늙어보지 않고 늙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늙음은 관념적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오롯이 신체로 통과해야 하는 경험의 영역이어서 그렇다. 이러한 세대 간 이해의 한계 속에서도 공연을 유쾌한 연대로 마무리한 시도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그 즐거움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 관객의 몸을 무대 쪽으로 한 발 더 끌어당겨 서로의 거리를 재조정하는 '기웃거림'의 실천으로 작동한다. 서사의 완결성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이전에 ‘살피는 일’에 서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개를 기울이는 태도 그 자체다.
<이웃 기웃>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웃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타자의 얼굴 앞에서 얼마나 자주 고개를 기울여 왔는가이다. 레비나스가 말한 ‘얼굴’은 나의 의지를 앞질러 나를 호출하는 윤리적 사건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기웃’은 그 호출 앞에서 몸이 택하는 최소한의 동작인 살피고, 기울이고, 가까이 가는 일로 나타난다. 청년의 불안은 공동체의 살결이 사라진 자리에서 흔들리는 숨으로, 중년의 ‘버티-기’는 멈춰 선 자아를 다시 일으키는 숨표로, 노년의 얼굴은 타인을 품어내는 시간으로 변주된다. 함께여서 홀로 되고, 홀로여서 함께할 수 있다는 역설이 세대의 몸을 건너오며 ‘이웃’은 고정된 범주가 아니라 타자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능동적 태도로 다시 쓰인다. 결국 이 공연은 거창한 화해를 선언하지도 권하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의 곁을 살피는 것이 어떨지 넌지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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