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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미래의 인류상에 대한 개인적 상상: 정훈목 <야라스(Yaras)>

공연비평

Vol.125-1 (2026.1.5.) 발행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_ ⓒ 옥상훈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 과거에는 SF소설이나 애니메이션·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래의 모습이, 상상에 그쳤던 수많은 일들이 AI가 등장하면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진화를 거듭한 인간은 어떻게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상상력은 정훈목의 <야라스(Yaras)>가 시작된 출발점이다. 정훈목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댄스컴퍼니 피핑톰(Peeping Tom)에서 2009년부터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야라스(Yaras)>는 현재 예술 감독으로 있는 주목댄스씨어터와 함께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움직임으로 독창적 작품 세계를 표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작품은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한국에서 초연 후 2024년에는 벨기에 문화원이 벨기에의 전통 있는 공연 전문 극장 르140과 협력해 공연을 올렸다. 2025년에는 <야라스(Yaras)>의 두 번째 버전이 12월 12-14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우선 정훈목이 활동하고 있는 벨기에는 무용계에서 중요하다. 20C에 들어서 벨기에는 컨템퍼러리댄스의 중심지로 급부상했고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린 안느 테레사 드 키어스마커, 알랑 플라텔 등 세계적 안무가들을 배출했다. 이들의 활약을 통해 벨기에 현대무용은 저변확대와 관객들의 수준 고양에 기여했는데 그와 같은 벨기에의 전문 극장에서 <야라스> 공연을 가졌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물론 피핑톰 무용단의 일원이라는 점이 플러스로 작용했다 하더라도 동시대 무용의 최전방인 나라에서 공연을 올리고, 비록 대극장은 아니지만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한국 현대무용의 콘텐츠와 무용수들로 세계 무대에 뻗어 나가고 있는 우리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그가 <야라스(Yaras)>에서 표방한 것은 트랜스휴먼이라기보다는 포스트휴먼에 근접한다. 트랜스휴먼은 인간과 포스트휴먼 사이의 존재로, 개조를 통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획득한 사람이다. 둘이 혼용되고 있긴 하지만 포스트휴먼은 SF장르나 미래학, 현대 미술, 철학 등의 분야에서 유래했고 인간이 아닌 상태에 존재하는 개인이나 실체를 의미하며 인간을 뛰어넘는 탈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신인류를 뜻한다. 포스트휴먼은 이합 하산의 논문을 통해 학술적으로 다뤄졌다. 로봇개와 로봇새가 등장했다고 해서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개선하려는 신념이나 운동을 뜻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을 말하기보다는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동물, AI 같은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 및 공존을 탐구하는 포스트휴머니즘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야라스(Yaras)>의 서사는 '야라'라는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룬 미래 시대 가상의 종족을 지칭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개한 자아의 일종인 야라족과 독특한 캐릭터 안에 현재를 대표하는 종족, 이 두 가지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각각의 무용수(강성룡, 구은혜, 권미정, 서정빈, 양승관, 유다정, 윤명인, 이예지, 전환성, 최민욱)들은 온몸에 타투를 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비뚤어지고 왜곡된 개인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미래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휴머니즘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그려갔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벨기에 현대무용의 특징을 다수 담고 있다.



공연 초반은 이머시브 공연의 형식을 취했다. 무대 위에 장식장 속 마네킹처럼 서 있는 남성은 야라족이며 관객들은 무대 위를 통과해 그를 살펴보다 객석에 착석한다. 잠시이지만 이러한 연출은 이머시브 공연이 추구하듯 관람자와 행위자의 경계를 없애고 공연의 일부가 되었다. 이번 <야라스(Yaras)>에서는 몽탈보의 공연을 연상시키는 구름 무늬의 영상을 포함한 감각적인 공간구성과 밀도를 높인 전개가 완성도를 높였다. 이후 구성은 잘 정제되고 유려한 신체 어휘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인간 내면에 감춰진 거칠고 본능적이며 야만적인 원시성을 숨기지 않는다. 과신전 된 신체와 괴성, 역동적이며 광기어린 퍼포먼스는 관객들을 불쾌의 감정으로 이끌지만 휴머니즘도 내포하고 있다.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은 가상의 미래에서도 소외된 인간들을 이끌어 줄 버팀목이 될 것이다.


안무가 정훈목의 <야라스(Yaras)>는 현대무용의 자유로움과 다양성의 구현을 통해 동시대가 주목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를 동시에 터치하는가 하면 유니크한 장면들의 연속으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그가 사용한 오브제들이 모두 전체를 이끌어가는데 필요한 것인가, 주제 표현에 있어서의 맥락 형성이 적절한가, 정훈목이 피핑톰 일원이 아니라 무명의 안무가여도 그의 불쾌의 감정이 일반 관객들에게 수용될 것인가의 질문이 따를 수 있겠으나 미래지향적인 상상력과 감각적인 이미지, 무용수들의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과 표현력, 묵직하게 끝까지 주제를 밀고 나가는 힘은 인정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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