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5-1 (2026.1.5.) 발행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윤종현
1장. 한국춤의 미학과 물성(materiality) 개념
몸이 그리는 새로운 지형도
춤은 더 이상 ‘움직임의 예술’이라는 단순한 정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참 많다. 그동안 한국춤과 관련된 미학적 용어에는 무엇이 있었나? 20세기 한국춤은 흔히 “한·흥, 맛·멋, 정중동·동중정”으로 설명되어 왔으나, 이는 현재 한국춤의 무대와 관객의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흥맛멋’과 같은 정서 중심, ‘정중동 동중정’과 같은 속도 중심의 언어를 대체할 새로운 미학적 어휘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물성(materiality)’ 개념으로 재배치하고자 하며, 이는 질감, 양감, 장력으로 구성된다. 이는 각각 춤태, 춤집, 그리고 춤장, 춤압, 춤세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춤태, 춤집, 춤장, 춤세
춤태(舞態)는 질감(texture)이다. 표면의 결, 촉감, 온도의 감각적 층위를 말한다. 춤집(舞量)은 양감(volume)이다. 공간을 점유하는 크기와 부피를 말한다. 춤집은 신체와 동작의 존재량, 그리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채움 또는 비움의 크기이다.
춤장(舞場)은 관객의 시점이다. 물리학의 ‘장(field)’ 개념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형성하는 기류와 장력을 가리킨다. 이는 관객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힘, 곧 작품에 스며들게 만드는 감각적 압력이다. 그러하기에 춤압(舞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공간 현상학 등에서 활발히 적용되는 ‘정동적 환경(affective atmosphere)’과 맞닿아 있다.
춤태와 춤집은 개념적으로 정확하게 쓰이지 않더라도 이미 한국춤의 현장에서 일정 부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춤장 혹은 춤압은 통용되지 않는다. 왜일까? 이것은 춤을 바라보는 평론가(관객)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유사하게 춤꾼이 사용하는 용어는 무엇일까? 춤꾼에게는 춤세(舞勢)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에너지가 어디로 뻗어 나가고 무엇을 겨누는가 하는 기세(氣勢)의 방향성(vector)이다. 춤세는 신체 내부에서 생성, 축적, 확대, 투사되는 기운(氣運)이다. 춤세(내적 벡터)는 ‘춤장을 생성하는 내부적 원인’이며, 춤장은 ‘춤세가 작동할 외부 조건’을 형성한다. 따라서 춤세와 춤장은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춤의 옥석을 가리기 위한 삼항 구조

춤태, 춤집, 춤세(춤장)는 상관관계가 분명하다. 춤태와 춤집은 질감과 양감으로서 상보(相補)적일 때 더욱 효과적이다. 곧 춤태만 좋다고 해서 좋은 춤이라 할 수 없고, 춤집만 크다고 해서 좋은 춤이라 할 수 없다. 춤집은 단순히 채움만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춤집이라는 개념 속에 채움과 비움이 정교할수록, 춤세는 선명한 벡터를 얻게 된다. 우리가 어떤 춤꾼을 ‘아우라’ 혹은 ‘카리스마’라는 용어로 설명하게 될 때, 그것은 대개 춤세와 연관된다.
21세기 변화된 환경 속에서 한국 전통춤의 옥석을 가리기 위해서는 이 삼항 구조의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홀춤 중심의 전통춤에서는 춤태, 춤집, 춤장이 정확하게 보인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춤태, 춤집, 춤장은 근본적으로 물리학의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이는 춤의 보편성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용어가 한국춤의 특수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춤의 매력을 세계적 보편성 속에서 살필 수 있는 기틀이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나는 이제 춤을 평함에 있어 춤태, 춤집, 춤장과 춤세를 통해 보고자 하는데, 그 첫 번째를 ‘윤종현의 춤’에 적용하려 한다.
2장. 윤종현의 춤: 기품(氣品)의 집을 짓는 성장의 여정
기품으로 이어진 춤의 명가

스승의 숨결을 딛고 세운, 견실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집 윤종현의 두 번째 춤판 <명가월륜 2>를 보았다. 강선영 명무와 조흥동 명무의 춤맥을 잇는 그의 춤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기품(氣品)이다. 품(品)자를 구성하는 세 개의 입 구(口) 자, 그 사각형을 하나의 반듯한 집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 개의 구(口)를 각각 강선영, 조흥동, 윤종현의 ‘집’으로 본다면, 이제 윤종현은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집을 짓기 위한 두 번째 토대를 보여준 것으로 짐작된다. 첫 번째 <명가월륜>이 강선영 춤의 윤종현적 수용과 재창작이었다면, 두 번째 <명가월륜>은 조흥동 춤의 윤종현적 수용과 재창작이었다.
화려한 첫 번째 춤판, 견실한 두 번째 춤판
윤종현의 첫 번째 집이 외형적으로 화려했다면, 그가 지은 두 번째 집은 내부적으로 견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집을 지은 것은, 어쩌면 윤종현이 생각하는 ‘강선영의 이미지’와 ‘조흥동의 이미지’가 맞닿은 지점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어느 것이 더 좋다는 평가는 불가능하다. 오직 다를 뿐이며, 윤종현은 두 스승의 다름을 더욱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방식을 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알려진 대로 윤종현은 어린 나이에 강선영 문하에 입문했고, 조흥동 문하에서 지난 10년간 수학했다. <명가월륜 2>라 명명할 수 있는 이번 춤판은 조흥동 문하에서의 10년 수련 과정을 증명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한국 전통춤의 대가 두 분의 문하에서 수학한 윤종현에게는 한국춤 명가(名家)의 도도함과 단단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그의 춤을 보며 두 단어를 비교하게 되었다. 윤종현의 춤은 품격(品格)의 춤인가, 기품(氣品)의 춤인가? 그의 춤에선 격(格)보다 기(氣)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기는 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격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그는 드러낼 것이 더 많을지 모르나, 지금 단계에서는 안에 품고 있는 것이 더 많은 셈이다.
단정, 유려, 강단
그의 춤을 보며 세 단어가 떠올랐다. 윤종현의 춤은 ‘단정하고, 유려하고, 강단 있다’. 이는 어쩌면 윤종현이 구성한 이번 춤판의 세 흐름인 ‘초월, 반월, 만월’과도 통할지 모른다. 초월은 단정했고, 반월은 유려했으며, 만월에는 강단이 느껴졌다.
나는 윤종현의 춤을 볼 때, 그 춤이 윤종현 개인의 춤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서울경기춤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춤을 보며 ‘서울경기춤’의 미학을 생각한다. 서울경기춤이 담고 있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이 바로 단정, 유려, 강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윤종현의 춤에서 이 세 가지 성취의 완성도는 저마다 달랐다. 내 시각에서 과거에 해당되는 <초월>의 단정(端整)은 매우 뛰어났고, 현재에 해당하는 <반월>의 유려(流麗)는 우수했으나, 미래에 해당하는 <만월>의 강단(剛斷)은 다소 아쉽다. ‘강단’은 서울경기 사람의 주요한 특성이자, 앞으로 윤종현이 더 심화시켜야 할 덕목이다.
<초월>은 소년성(순수성)의 춤이었다. 가객 정승준과의 만남에서 보여준 기품 또한 훌륭했다. <반월>에서는 ‘중부살풀이춤’을 통해 청년성을 드러냈다. 여성성의 상징을 남성성의 장(場)으로 옮겨왔으며, 흰 수건 대신 흑수건을 들었다. <만월>의 절정은 ‘진쇠춤’이었다. 윤종현의 춤을 볼 때마다 특히 시선이 머무는 곳은 ‘발’이다. 그의 발놀림은 재빠르고 경쾌하면서도, 여유로움과 도도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는 조흥동 명무의 대물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경기춤의 미학: ‘농치다’와 ‘눙치다’
그의 춤은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다. 이는 그의 인성이 반영된 듯싶다. 그러나 춤판에서는 관객에게 또 다른 매력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서울경기춤의 춤판에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사라진 것일지 모른다.
지금의 서울경기춤, 혹은 윤종현의 경기춤에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은 ‘농(弄)치다’와 ‘눙치다’이다. ‘농치다’는 관객에게 기분 좋은 장난을 거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윤종현의 춤에는 그가 무대의 맨 앞에 와서 마치 무대를 벗어날 듯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추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농치다’와 가장 근접한데, 그 방식이 아직 다채롭지 못하다. 위치와 조명을 통해 ‘농치는’ 분위기는 만들어지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거나 윤종현만의 아우라를 느끼게 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농치는’ 정서와 기술은 앞으로 윤종현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 하나는 ‘눙치다’이다. 이는 ‘누그러짐’과 연관된다.
윤종현 또는 서울경기춤연구회의 춤을 보면 ‘연구’의 성과는 확실히 보이지만, 그것이 ‘연행’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윤종현이 앞으로 진정 연구해야 할 것은 자신의 기량 향상 이전에, 관객과 어떻게 교감할 것인가 하는 숙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윤종현의 성향상 기품과 품격을 지켜나가면서도 ‘농치고 눙치는 사위’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조명 등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윤종현의 ‘몸’ 자체에서 뿜어져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춤태나 춤집보다는 춤장, 춤압, 춤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농치는 사위’는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남성적인 교태(嬌態)에서 가능할 것이고, ‘눙치는 사위’는 관객을 너그럽게 포용(包容)하는 마음으로 대상을 포옹(抱擁)한다는 자세에서 나올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춤을 배운 ‘엄친아’ 느낌이 강한 윤종현에게서, 내재한 남성성이 더 잘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윤종현의 춤에서 보이는 최고의 가치는 ‘소년성’과 ‘수행성’이다. 그의 춤을 보며 늘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수행자의 태도에 감응(感應)한다. 그러나 감응(感應)과 감흥(感興)은 엄연히 다르다.
우아한 부채춤, 정겨운 장구춤
이번 공연에서는 <초월>, <반월>, <만월>의 연결을 위해 다른 레퍼토리와 춤꾼들이 무대에 등장했는데, 그 구성이 매우 정교했다. 특히 부채춤과 장구춤은 내게 깊은 품격을 남겼다. 20세기 워커힐 등에서 보던 화려한 쇼의 형식을 버리고, 우아하고 정겨운 예술로 되돌려 놓았다. 의상과 소도구의 선택에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부채춤>(정지수, 황윤지, 박소영, 이소은)과 <장구춤>(권덕연, 김현결)을 21세기 소극장의 예술춤으로 격상(格上)시킨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서울경기춤의 5S
이번 ‘윤종현의 춤’은 한 개인의 공연인 동시에, 서울경기춤연구회 회장으로서 서울경기춤을 정립하려는 의지로 읽혔다. 그가 선보인 다섯 가지 춤에서 서울경기춤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입춤은 형식미(Structure)이고 진쇠춤은 화려함(Splendid)이지만, 이는 다른 지역 춤에도 해당하므로 생략하겠다. 대신 서울경기춤과 윤종현의 춤을 설명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정서를 포착했다.
윤종현의 입춤은 명징했고(Sharp), 초립동은 경쾌했으며(Sprightly), 중부살풀이춤은 강인했다(Strong). 한량무는 신비로웠고(Secret), 진쇠춤에는 부양감(Soaring)이 충만했다. 다시 강조하자면 입춤은 단정했고, 초립동은 순수했으며, 중부살풀이춤은 담백했다. 한량무는 은근함이 돋보였고, 진쇠춤에서는 비상했다.
이를 춤태, 춤집, 춤세로 본다면 입춤과 초립동은 춤태의 영역이며, 중부살풀이춤과 진쇠춤은 춤집이 살아 있었다. 한량무는 그 접점에 있다. 윤종현의 춤은 한 개인의 성과를 넘어, 앞으로 서울경기춤의 본보기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서울교방의 민살풀이춤 VS. 윤종현의 중부살풀이춤
여러 춤 중 가장 주목할 것은 ‘조흥동류 중부살풀이춤’이다. 이 춤은 조흥동 명무의 지역성과 삶의 태도가 담긴 품격의 춤이다. 지금까지 조흥동 명무 외에 남성이 이 춤을 추는 것은 처음 보았다. 앞으로 윤종현이 이 춤의 맥을 크게 이어갈 것이라 믿는다. 혹자는 이 춤을 서울교방의 민살풀이춤과 연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시각은 다르다. 춤사위를 걷어내고 본질을 드러냈다는 측면에서는 상통하나, 민살풀이춤이 전라도의 춤이라면 이 춤은 엄연히 경기도의 춤이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민살풀이춤은 하향(下向) 지향이고, 윤종현의 춤은 상향(上向) 지향이다. 서울교방의 민살풀이춤이 다소 어둡고 습기가 느껴지는 뿌리와 같은 춤이라면, 윤종현의 중부살풀이춤은 따스하고 온기가득한 공간에 활짝 핀 꽃과 같은 춤이다.
모든 춤은 중력에 대한 태도에 따라 상향 의지(Up-ward)와 하향 의지(Down-ward)로 나눌 수 있다. 전남춤은 하향지향 또는 하향 의지로, 곧 땅으로 삭히는 힘이 강해 고통을 인내하는 '뿌리'와 같다 상향지향 또는 상향 의지를 지닌 서울경기춤은 하늘로 피어오르는 '꽃'과 같다. 서울경기춤은 중력을 극복하고 몸을 밀어 올리는 부양감(Soaring)이 핵심인데, 윤종현 춤의 매력 또한 여기서 기인한다. 특히 그의 한량무에서 척추를 곧게 세울 때 느껴지는 ‘돋움의 환희’는 풍성한 꽃 한송이 활짝 피어나는 부양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흔히 여성의 춤을 ‘꽃’에 비유한다. 그런 춤은 여성의 춤대로 아름답지만, 남성의 춤에서 ‘활짝 핀 꽃’을 느끼게 해주는 건, 서울경기춤의 매력이요 윤종현의 특장(特長)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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