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5-1 (2026.1.5.) 발행
글_ 송준호(춤평론가)
사진제공_ 세종문화회관, 서울남산국악당

한국춤을 동시대춤으로 만드는 작업은 전통춤, 창작춤, 현대춤 세 영역에서 모두 진행되고 있다. 이런 기획에서 동시대성은 흔히 전통을 현대의 감각으로 재조명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그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은 전통성이 그 변화 안에 어떻게 살아있는지 담아내는 것이다. 결국 형식과 내용에서의 참신한 재해석과 전통의 내재 원리에 대한 통찰력이 모두 필요하기에 한국춤의 현대화 작업은 매번 만만치 않은 시도가 된다.
서울시무용단이 선보인 <미메시스>는 전통춤 8종을 자연의 원소와 대응시켜 전통춤 문법을 새롭게 재현한 시도다. 작품은 그 제목처럼 자연의 속성을 모사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그 내적 리듬을 춤 표현에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즉 교방무, 한량무, 소고춤, 장검무, 살풀이춤, 승무, 무당춤, 태평무로 구성한 장면을 각각 ‘물, 바람, 땅, 번개, 허공, 하늘, 불, 빛’이라는 자연 요소와 결합해 춤이 자연의 속성을 은유한다는 콘셉트다. 각 종목을 재현하는 외형적인 방식은 기존의 전통춤 동작을 화려한 의상과 라이브 국악 연주, 심플한 무대 연출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갈라 공연이나 신전통춤 무대와 언뜻 유사해 보이지만, 전통춤의 동작 원리를 사유하게 하는 연결고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각 춤과 자연 요소와의 매칭은 단순히 상징적인 접목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춤 고유의 동작이 지닌 질감들은 자연의 리듬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재현된다. 가령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교방무는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미세한 곡선과 회전의 파동을 통해 물결의 속성을 표현한다. 가볍게 흩날리는 도포의 무게감이 인상적인 한량무에선 공기의 질감과 바람의 전개가 섬세하게 느껴진다. 가장 현대적으로 탈바꿈한 장검무는 직선의 긴장감과 잦은 멈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순간적이고 파괴적인 번개의 속성을 연출한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 자연 속성의 이미지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체성으로 재배열하는 미메시스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춤을 단일한 미학적 원리로 수렴시키는 대신 각각의 춤이 지닌 고유의 질감과 리듬을 재조직하는 방식은 비슷한 움직임에서도 다른 감상을 자아내는 데 성과를 거둔다. 물론 각 종목 간 해석의 격차나 구성의 완결성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이를테면 사실상의 클라이맥스 역할을 하는 무당춤 대목은 강렬한 붉은 조명 아래 무당춤의 여러 영역을 다양하게 조망하며 가장 짙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전체 공연으로 볼 때는 일관된 흐름이 아니어서 오히려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종목 간 파편적인 해석 때문에 개별 춤의 감각적 즐거움 외에는 작품 전체의 재현 방향이 선명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보완할 지점이다.
이러한 대목은 본 공연에 앞서 마련된 <미메시스 드로잉>이라는 행사를 통해 좀 더 뚜렷이 나타난다. 개별 종목들을 분리해 춤마다 짧은 대목을 선보이며 초대된 관객이 그 찰나의 강렬한 이미지를 피사체 삼아 소묘하는 이벤트인데, 바로 <미메시스>의 특징이 잘 드러난 행사였다. 즉 한국 철학과 전통문화의 집대성인 전통춤을 현대 관객이 가장 감각적으로 흥미롭게 소비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해 사유하고 재생산하는 현대의 감성에 이 같은 기획 방향은 매우 적절하고 또한 효과적이다. 다만 개별 종목이 연결돼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공연에서 이런 파편적인 장점은 상쇄되기 마련이다. 이 점을 다음 공연에서 어떻게 해소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반면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 〈Roots Hz 뿌리의 주파수〉는 ‘전통’이라는 키워드를 현대적 관점에서 들여다 본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물을 제시한다. 안무가 차진엽, 거문고 연주자 심은용, 소리꾼 권송희이 몸, 악기, 목소리라는 각자의 언어로 질문하고 응답하는 이색적인 퍼포먼스인데, 세 사람의 합의된 전제는 ‘전통’에 대한 정의와 태도이다. 즉 전통은 계승해야 할 유산이자 무형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에도 몸과 소리, 공간에 살아있는 실체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과거와 현재를 선형적으로 배치해 연결하는 접근법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전통을 각자의 영역에서 공명하는 콘셉트로 이어진다.

작품의 두 축은 제목처럼 ‘뿌리(Roots)’와 ‘주파수(Hz)’다. ‘뿌리’는 여기서 과거의 근원을 추적하는 기존 전통 콘텐츠의 은유가 아니다. 전후좌우로 퍼지고 서로 얽혀 있는 전통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함축한 표현이다. ‘주파수(Hz)’ 역시 음파나 진동의 물리적 단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공명하면서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는 전통의 존재감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은 세 사람이 따로 또 같이 그려내는 작품 구성에 그대로 반영된다. 차진엽은 좁게는 본인 파트인 <획>의 안무가이지만 넓게는 공연 전체의 방향성을 주도하며 <Linger>의 심은용과 <달 넘세> <만물>의 권송희와 연결되고 뒤섞인다. 즉, 이 작품은 단순히 다른 파트의 예술가들이 만나 차례대로 전통을 이야기하는 나열식 공연이 아니다. 특정한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고, 어떤 분야로도 한정할 수 없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관계를 통해 계속해서 그 의미가 변화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점을 세 사람의 릴레이와 합동 퍼포먼스로 연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혀 다른 세 장르의 결합과 진행은 각 영역의 특성과 차이를 부각하기보다 작품 전체의 테마를 끊임없이 환기하며 신선한 감각을 제공한다. 특히 전통이라는 키워드를 ‘과거-현재’라는 선형적 시간관 대신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며 관계를 맺는 리좀(rhizome) 개념으로 풀어낸 것이 흥미롭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한 무대에 서는 기획은 낯선 시도도 아니고, 무엇보다 융화되지 않으면 날것의 합동 공연에 그칠 위험도 있다. 다행히도 이 작품은 전통에 대한 철학을 하나의 테마로 노련하게 녹여내며 몸, 악기, 소리가 관계를 맺고 공명하는 삼각 대화를 매끄럽게 소화해낸다. 세 사람이 각자의 파트에 머물지 않고 몸으로 어우러지며 음악이 공간을 채우는 공연 도입부와 후반부 장면이 바로 그렇다. 즉 ‘뿌리’와 ‘주파수’를 ‘관계’와 공명‘으로 구체화하는 이 장면을 통해 작품은 전통의 현재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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