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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홍콩무용단의 <24절기(A Dance of Celestial Rhythms)>

공연비평

Vol.124-1 (2025.12.5.) 발행


글_ 염혜규(춤평론가)

사진제공_ 홍콩무용단, SIDance



홍콩무용단은 자신들을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비젼과 홍콩의 특색을 반영하는 데 전념해 온 무용 단체라고 이야기한다(공연정보 및 공식홈페이지 참조). 또한 홍콩의 문화 대사로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통한 문화적 교류로 홍콩만의 독특한 예술 양식을 소개하고 있다고도 한다. “홍콩의 특색”, “홍콩만의 독특한”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홍콩의 특색이란 무엇일까?



지난 10월 18-19일 ‘홍콩위크2025@서울’행사의 일환으로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려졌던 홍콩무용단(HK Dance)의 창작무용극 <24절기(A Dance of Celestial Rhythms)> 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4절기>는 주제를 비롯하여 표현과 형식의 측면에 이르기까지 공연 전체를 통해 다양하게 홍콩의 특색 내지는 홍콩의 정체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홍콩은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개방적인 국제도시로 발전해 왔다. 한편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독자적 지역성을 지키려는 경향과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세대별로도 차이를 보인다. 홍콩의 이런 독특한 혼종성은 홍콩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또한 홍콩무용단이 추구하는 홍콩만의 특색이 담긴 예술 양식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중국의 전통 사상에 뿌리를 둔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계절을 구분한 개념이다. 24절기는 농경사회인 다른 동아시아권에서도 사용되었다. 한편 24절기는 계절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순환이 인간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양윈타오 예술감독은 24절기가 갖는 중국문화로서의 '특수성'과 인간 삶의 원리로서의 '보편성' 모두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였다.




공연은 24절기 전체가 아닌 9개의 절기로 구성되었다. 계절 별로 두세 절기로 구성되어 사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 <24절기>는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표현에 주력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 영상과 조명, 의상은 안무와의 조화를 통해 계절의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작곡가 김철환, 의상 디자이너 민춘홍, 조명의 류백희가 참여한 한국 제작진과의 협업은 중국을 넘어선 전통의 확장을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감각을 기반으로 관객 친화성을 높이는 시도이기도 하다.


공연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배경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나뭇잎 형태의 스크린이다. 공연 내내 보여지는 다양한 영상은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춤과 더불어 공연 전체를 이끄는 또 다른 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뭇잎 스크린에는 잎맥을 바탕으로 구름이나 파도, 눈보라 같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이나 추상적인 형태의 일정한 패턴이 비친다. 자연현상의 경우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바라본 듯한 영상으로 구체적인 대상의 식별보다,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계절의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절기가 바뀔 때마다 영상의 내용도 변하기에, 춤 이전에 먼저 영상으로 절기를 짐작할 수 있다. 


공연은 ‘경칩’으로 시작된다. 무대 중앙에 큰 원을 그리며 바닥에 넓게 펼쳐진 흰 드레스 형태의 옷을 입은 여성 무용수가 누워있는 여러 무용수에게 둘러싸인 채 서 있다. 거대한 조형물처럼도 보이는 의상을 입은 채 팔을 천천히 움직이는 무용수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여신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무용수가 펼쳐졌던 옷자락을 몸에 감으며 뒤로 사라지면 만물이 깨어남을 알리듯 누워있던 무용수들이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흰옷의 무용수는 공연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며 수미상관 구조를 보여준다. ‘경칩’에서 옷을 입은 채 시작했던 것과 달리 ‘대한’의 앞 절기인 ‘대설’의 마지막에 두 무용수가 무대를 모두 덮을 만큼 큰 흰색 천을 들고 나와 춤추고 있던 두 무용수의 머리 위로 넘겨 무대 앞에 둔다. 마치 눈으로 세상을 덮는 듯한 연출이다. ‘대한’에서 남자 무용수가 이 천으로 여성 무용수를 덮으면 천의 구멍을 옷처럼 입으며 ‘경칩’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순환을 암시하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경칩에서 대한에 이르기까지 계절을 짐작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영상과 더불어 조명 또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여름에는 주홍빛, 가을, 겨울은 푸른빛이나 백색 조명을 이용하여 덥고 차가운 계절 감각을 표현한다. 의상 또한 절개가 많이 들어간 살갗이 비치는 흰색 시어 소재 의상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검은색에 가까운 색의 의상까지 계절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안무 또한 계절 분위기의 표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손끝의 섬세한 움직임이 강조되는 움직임으로 봄이 찾아옴을 보여준다거나 여름에는 보리 단으로 보이는 곡식을 손에 들고 춤을 춘다. 또한 남자 무용수들은 역동적인 군무를 보여준다던가 위에 걸쳤던 상의를 벗어 투우사처럼 이리저리 펄럭이며 바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여성 무용수들이 일제히 긴 천을 공중으로 휘날리며 형태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매스게임의 리듬체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24절기>에서 전통춤이 중심은 아니다. 발레 동작을 기본으로 변형을 준 동작 또한 종종 발견된다. 때로는 절기에 따라서는 무술 동작의 요소가 섞인 춤이 펼쳐지기도 한다.


공연은 다양한 시도를 통하여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게 구성되었다, 또한 시청각적인 요소들을 적극 활용한 계절과 자연의 변화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양윤타오는 안무가의 말에서 중국, 전통문화를 언급하지만, 한편으로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고도 하겠다. 앞서 말한 홍콩의 정체성, 홍콩의 독특한 예술양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시도는 작품의 성격을 불분명하게 한다.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듯하다. 또한 춤이 중심이 된다기보다 춤은 작품의 여러 구성요소 중 하나로서 존재하는 듯하다. 실제로 절기에 따른 변화를 공연 내내 보여주는 나뭇잎 스크린은 무대 벽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기에 무대로 향하는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다. 짧은 시간이면 몰라도 공연 내내 비치는 영상은 춤 자체에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다. 물론 춤 또한 영상처럼 계절을 표현하는 하나의 배경 요소로 본다면 문제 될 건 없다. 궁극적으로 <24절기>는 춤 자체에 중심을 두는 작품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양윤타오는 안무가의 말에서 “춤은 본래 많은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24절기>는 그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24절기>는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자연의 순환 등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와 연출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느끼고 반응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마치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화장 효과를 위한 메이크업 제품 광고 모델을 보는 느낌이다. 얼핏 보면 생얼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화장을 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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