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리뷰

공연비평

놀이에서 시작되어 삶에 다다르다: 차진엽x심은용x권송희 〈Roots Hz 뿌리의 주파수〉

공연비평

Vol.124-1 (2025.12.5.)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서울남산국악당



서울남산국악당의 대표 브랜드 시리즈 ‘남산컨템퍼리리-전통, 길을 묻다’가 5년 만에 돌아왔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이 시리즈는 ‘남산에 담는 이 시대의 예술’을 주제로 전통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여 실험적인 창작 무대를 만들었다. 그동안 원일, 이정윤, 최영준, 김선미, 김재철, 권송희, 김보라, 김재덕 등이 이 무대에서 ‘지금’ ‘여기’를 질문하며 전통예술이 현재와 어떻게 만나는지 각자의 답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부활의 첫 무대로 마련된 〈Roots Hz 뿌리의 주파수〉(11.13-11.14.,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는 안무가 차진엽, 거문고 연주자 심은용, 소리꾼 권송희가 함께하며 전통을 단절된 유산이 아니라 현재라는 시간 위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관계적 존재’로 다시 바라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을 맞이하는 건 폐합판 조각들이 얼기설기 엮이어 세워진 검은 벽이다. 건축가 이병엽과 무대디자이너 정승준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벽채 디자인은 사람들 사이에 우뚝 솟아 단절과 고립을 유발시키는 도시의 현재를 은유하지만 이제 곧 공연이 시작되면 참여 아티스트들의 등퇴장과 더불어 접촉하고 공명하며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생성되는 새로운 장소로서 재의미화될 것이다. 무대 바닥에 깔린 모래는 이 같은 인위적인 도시성을 반박하며 원래 그대로 존재했던 자연성을 상징한다. 공연은 이 상반된 두 세계의 대화인 동시에 충돌이기도 하다.


차진엽은 공연의 세 가지 요소인 양반의 악기와 서민의 소리, 현대의 몸의 만남을 통해 ‘신체의 민주성’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양반들의 정신적인 삶과 풍류를 대표하는 악기로 선비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거문고와 서민들의 소리 가운데 특히 여성 농인(農人)들이 즐기던 노래, 그리고 현대무용을 전공한 몸, 이 이질적인 세 가지 요소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질 때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신체의 민주성’을 이야기하는 주체가 움직임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엘리트 무용인이라는 점은 이 화두를 다른 맥락으로 읽히게 만들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전통을 오래전에 완성되어 박제되고 보존된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공명하며 유동적인 관계를 맺는 ‘살아 있는’ 것으로 바라보며 이 관계성 안에서 평등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은 전통예술의 ‘지금’ ‘여기’를 탐색하는 현대의 모든 컨템퍼러리 창작자들이 장르와 무관하게 공유할 태도의 문제로 확장된다.



공연은 출연자들이 무대 상부에서 늘어뜨려진 밧줄에 녹음기를 매다는 퍼포먼스로 시작된다. ‘Play’라고 붙여진 부제에 걸맞게 유희성이 도드라진 퍼포먼스다. 줄에 매달린 녹음기가 출연자들의 손을 떠나 원심력에 따른 원운동을 시작하면 미리 녹음해 저장해둔 소리가 흘러나온다. 출연자들은 녹음기가 회전 그네처럼 무대 위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는 동안 그 궤적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피하기도 한다. 소리와 움직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동안 녹음기에서 나오던 소리는 곧 소리꾼 권송희의 육성으로 옮겨간다. 이들이 공연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관계성, 즉 각자의 장르에서 통용되는 언어들이 어떻게 소통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매우 흥미로운 인트로다.


‘다이얼로그 퍼포먼스’를 표방하는 공연은 차진엽의 ‘획’을 거쳐 심은용의 ‘Linger’를 지나 권송희가 사운드디자이너 정중엽과 함께하는 ‘달 넘세’와 ‘만물’에 이르며 인트로에서 보여준 시각적 이미지를 다시 분해해 저마다의 언어로 되돌린다. 그러나 이미 어울림을 경험해 본 이 요소들은 움직임과 선율과 소리로 각각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고 다른 언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심은용의 역동적인 거문고 퍼포먼스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공연의 핵심을 전달한다. 거문고는 악기로서 단순히 선율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머무르지 않고 움직임과 소리를 매개하고 교차시키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다.




심은용의 퍼포먼스를 잇는 권송희의 소리는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던 공동체 의식의 정신을 담아내며 이 어울림을 확장한다. 공연의 출발점이었던 ‘뿌리’를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그의 소리에는 ‘그때’ ‘거기’에서부터 ‘지금’ ‘여기’로 이어지는 긴 시간성이 압축되어 있다. 공연은 출연자들이 다시 무대로 나와 함께하는 ‘숨’으로 마무리된다. 세 사람의 놀이로 시작되어 각자의 언어를 거쳐 숨에 도달한 이 여정은 결국 삶을 다시 써 내려간 과정인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비평지원 안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