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3-2 (2025.11.20.)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일곱 번째 시즌 프로그램으로 예술감독 김성용과 해외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의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는 ‘더블빌: 김성용 & 윌리엄 포사이스’(11.8.-9.,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를 선보였다. 총 아홉 개의 시즌 프로그램 가운데 세 개의 프로그램이 11월에 몰려 있어 단체 내부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터이지만 외부에서 언론과 평단, 관객들이 단체를 향해 보이는 관심은 포사이스와 함께 꾸미는 이 ‘더블빌’ 공연에 집중되었을 터다.
포사이스의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
현대의 무용계에서 가장 중요한 안무가 중 한 명인 포사이스는 그 명성에 비해 국내 무대에서 공연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안무가는 아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그의 초기 대표작인 〈인 더 미들(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무대에 올렸고, 그의 컴퍼니가 2013년 처음 내한해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보여주었으며, 지난해 박세은이 출연은 물론 프로듀서로 기획에 관여한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갈라’에서 〈정교함의 짜릿한 전율(The Vertiginous Thrill of Exactitude)〉을 선보인 것이 전부다.
1949년 뉴욕에서 태어난 포사이스는 무용 인생 초반에 등장하는 조프리발레학교와 조프리발레단 생활을 제외하면 생애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197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로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안무작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84년부터 2004년까지는 프랑크푸르트발레단을,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자신의 컴퍼니인 포사이스컴퍼니를 맡아 예술감독으로 조직 운영과 예술 창작을 병행했다. 이후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파리오페라발레단, 영국국립발레단, 스칼라발레단, 보스턴발레단 등 여러 단체와 협업하며 프리랜스 안무가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클래식 발레에 기반을 두지만 전통적인 포지션을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음악성, 속도감, 균형감, 유연성 등의 요소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컨템퍼러리의 즉흥과 우연성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포사이스의 안무 방식은 지난 50여 년간 만들어 온 수십 편의 작품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규범이 되었다.

포사이스가 이번 ‘더블빌’ 무대에서 선보인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이하 ‘편평한 것’)은 영국 해군 장교 로버트 팰컨 스콧의 두 번째 남극 원정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콧은 1901년부터 1904년까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남극 원정을 지휘하여 남극점에서 660km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했는데, 이는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남쪽에 당도한 기록이었다.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극지 원정에 뛰어들고 있었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스콧은 곧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1910년 테라노바호를 이끌고 제2차 남극 원정에 나선 스콧과 동료들은 1912년 1월 18일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아문센 원정대가 불과 한 달 전 남극점에 먼저 도달함으로써 최초를 꿈꾸던 스콧의 목표는 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귀향길에 악천후 속에서 조난당해 극한의 추위와 동상,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다 전원 사망하였다.
당시 원정에 함께했던 대원 로렌스 오츠는 동상으로 인해 일행의 속도에 맞출 수 없게 되자 “잠시 밖으로 나갔다 오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I am just going out and may be sometime)”라는 ‘유언’을 남기고 홀로 이탈했다. 오츠의 이 유명한 유언은 1997년 프랜시스 스퍼포드의 소설 『I May Be Some Time』의 제목으로 차용되며 스콧 원정대의 영웅적인 최후가 다시금 조명되기도 했다.
포사이스는 1985년부터 스콧의 여정과 관련해 여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200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된 〈편평한 것〉은 그들 프로젝트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포사이스는 간난신고 끝에 남극에 도착했지만 아문센보다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스콧의 허무감을 곱씹었다. 그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남은 것은 없었다……. 마치 춤과 비슷하다”라고 말하며 공감을 표했다.
〈편평한 것〉은 음악에서의 대위법적 구조를 안무에 적용했다. 대위법은 명료하게 구분되는 선율적 독립성을 지닌 두 개 이상의 성부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하는 방식으로, 화성법에 의한 음악의 수직적 결합과 반대되는 수평적인 기법이다. 앞서의 책에서 스퍼포드는 스콧과 아문센의 두 원정을 ‘대위법’에 비유했고, 포사이스는 이를 움직임을 통해 시각적으로 다시 구현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14명의 무용수가 무대 뒤에서부터 엄청난 속도와 기세로 20개의 테이블을 밀며 달려 나온다. 무용수들은 테이블 사이사이, 혹은 테이블 위아래의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몸을 접고 구기며 움직임이 가능한 영역을 탐색하고, 테이블 위에 앉고 눕고 엎드리고 팔을 들고 다리를 뻗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테이블과 관계를 맺거나 이탈하려 한다.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기에 무용수들은 다른 무용 공연에서처럼 뛰고 돌고 날아오르는 역동적이거나 수직적인 움직임을 구사하지 못한다. 무용수들은 테이블 사이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수평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서로의 움직임을 빠르게 ‘스캔’하여 신호를 감지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대열을 정렬한다. 무대는 이들이 뿜어내는 긴장감 넘치는 에너지로 금세 가득 찬다.
무용수들이 발레의 문법대로 움직이지 않음에도 포사이스 특유의 정교함이나 긴장감은 전혀 느슨해지지 않는다. 포사이스는 발레의 움직임을 극단적으로 변형해 날카로운 대각선이나 예각을 만들어내는 대신 컨템퍼러리의 순간성과 우연성을 통해 예측이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긴장도를 한껏 끌어 올린다. 25분 남짓의 짧은 작품이지만 공연은 긴박한 속도감으로 무대를 장악하며 무용수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포사이스는 2009년 이 작품의 온라인 버전인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에 대한 동기적 오브제(Synchronous Objects for One Flat Thing, Reproduced)〉(이하 ‘동기적 오브제’)를 발표하며 움직임의 데이터화를 시도했다. 〈동기적 오브제〉는 포사이스가 창시한 ‘안무적 오브제’ 개념을 증명하기 위한 작품으로, 움직임을 수행하는 무용수의 신체 없이도 ‘신체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포사이스는 2005년부터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ACCAD(예술디자인을 위한 고급 컴퓨팅 센터와 무용학과) 연구팀과 함께 〈편평한 것〉의 움직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데이터로 환원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웹사이트 ‘동기적 오브제’(https://synchronousobjects.osu.edu/)에서는 〈편평한 것〉의 공연 영상에서 추출된 움직임이 데이터화와 재구성을 거쳐 20개의 오브제로 재탄생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포사이스는 지난 2013년 내한 무대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발레가 한계이자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하며 “무용계는 발레의 미래가 과거와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란 걸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편평한 것〉을 공연으로 선보이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동기적 오브제〉를 통해 ‘신체적 사고’에 대한 사유를 좀 더 널리 나누고자 하는 것은 과거와 다른 형태로 나타날 발레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제안일 것이다. 초연이 올려지고 사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서야 〈편평한 것〉을 처음 접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숨찬 제안일지 모르나 움직임에 대한 사유를 한 뼘 더 넓혀줄 수 있다면 그 또한 기꺼울 것이다.
김성용의 〈크롤〉
‘더블빌’의 두 번째 작품으로 올려진 김성용의 〈크롤(Crawl)〉은 그가 개발한 움직임 방법론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을 바탕으로 한 신작으로, 동일한 방법론으로 접근한 〈정글〉과 〈인잇〉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무용수들의 고유한 움직임과 사유는 작품의 고유성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무용수들이 공동창작자로 안무에 참여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된 지 오래다. 공동창작의 개념과 범위가 점점 확대되면서 이제는 작품의 크레딧에도 참여자의 역할을 좀 더 세분화해서 표기하는 것이 하나의 방향성이 되었다.
김성용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무대 위 실연자들을 ‘무용수’도 ‘출연자’도 ‘퍼포머’도 아닌 ‘프로세서’라고 명명한다. 그의 작업은 사실상 이 ‘명명’에서부터 출발하는 셈이다. 프로세서에는 안무가가 만들어낸 움직임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각자의 고유성이 반영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프로세스 인잇’은 무용수들의 ‘감각’과 ‘반응’에 집중하는 리서치 방식이므로 무용수들은 ‘프로세서’로 작품에 참여하는 이상 자신의 감각과 반응을 신중히 관찰하고 그에 따른 움직임을 꺼내어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Crawl’은 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기다’ 또는 ‘기어가다’를 뜻하는 단어로, 김성용은 중동 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 사막의 뜨거움과 건조함, 느릿하게 어른거리는 아지랑이, 그리고 무엇보다 정지해 있는 듯하지만 매우 천천히 움직이며 모양을 바꾸고 이동하는 구름이 움직임의 주요 영감이 되었다.

〈크롤〉의 프로세서들은 〈편평한 것〉의 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과 달리 느릿느릿하고 꿈틀거리며 방향 또한 분명하지 않은 곡선적인 움직임으로 무대를 채운다. 관객들은 〈편평한 것〉의 아찔한 속도감을 겨우 견뎌내고 나면 〈크롤〉의 느린 호흡을 견뎌야 한다. 숨이 막히는 이유는 정반대지만 숨을 터트릴 타이밍조차 잡을 수 없는 후자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극과 극의 속도감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아찔한 낙차에 관객들은 긴장을 내려놓을 겨를이 없다. 그리고 이 속도감의 낙차 속에서 관객들도 공연을 보는 동안 자신의 ‘감각’과 ‘반응’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넓은 의미에서는 관객들도 ‘프로세서’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용은 감정의 외형이 아니라 감정이 발생하기 직전의 진동을 움직임에 담아내려 했다. 감정이 되기 전의 그 무언가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 그러나 이름 없이 존재하며 밖으로 튀어나오기 위해 꿈틀거리는 그것은 분명 살아 있는 무언가이다. 관객들은 아직 감정이 되지 못해 이름을 갖지 못한 그것을 ‘감각’한다. 김성용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말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전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바로 그 움직임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테이블이 공간을 제약해 바닥을 거의 사용할 수 없었던 〈편평한 것〉과 달리 〈크롤〉의 움직임은 거의 바닥에서 시작되고, 바닥에서 이루어지고, 바닥에서 완결된다. 프로세서들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 느리게 움직이고, 덩어리 안에서도 개별적인 존재로 분절되며, 느린 움직임이지만 그 안에서도 각각의 느림이 모두 다르다. 김성용은 신작을 위해 지난 2년여간 호흡을 맞춘 〈정글〉의 프로세서들을 다시금 한 무대에 세웠는데, 이들은 긴밀한 호흡으로 느림의 움직임에서 빈틈을 지운다.
공연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 것은 이정윤이 맡은 조명디자인이다. 전반적으로 낮은 조도 아래 무용수들은 곧잘 검은 그림자로만 보이지만 그로 인해 이 작품의 느리고 고요한 미학을 완성한다. 버티고 살아내는 안간힘이 그렇게 조명 안에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