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3-2 (2025.11.20.) 발행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안애순무용단
컨템퍼러리댄스의 특성 중 하나인 장소특정형 공연은 현재 다양하게 여러 안무가들에 의해 공연되고 있다. 특정 장소에 서사를 입히고 춤으로 풀어내는 공연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이미지로 변형이 가능하기에 활용도가 높은 것이다. 안애순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과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예술감독을 역임한 안애순 안무가와 다미아노 O. 비지, 알레산드라 파올레티 듀오가 공동 안무한 신작 〈나비존: The Butterfly Dream〉은 이처럼 창덕궁 낙선재라는 장소의 의미와 향수를 살리며 10월 30-31일 특별한 공연을 가졌다. 이번 공연은 2025 쌍방향 국제문화협업 지원의 일환으로 한국과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9개국 10개 국제문화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무용에 있어서는 3개의 공연(한국-프랑스, 한국-오스트리아, 한국-이탈리아)이 이뤄지는데 <나비존>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협업 작품이다.

작품은 사실상 주최, 주관을 안애순컴퍼니와 이탈리아 파브리카유로파재단(Fondazione Fabbrica Europa)이 함께했다. 추후 일회성 프로젝트를 넘어, 한국과 이탈리아를 잇는 장기 국제 공동제작 프로젝트로 진행되는데, 파브리카유로파재단은 유럽연합으로부터 ‘유럽적 관심을 추구하는 문화단체’로 공식 인증받은 기관이다. 또한 1994년부터 이탈리아와 세계 현대 예술의 혁신적 창작을 발굴하고 지원해온 국제적 예술 플랫폼이다. 매년 다원예술 축제를 열고 이를 통해 거장과 신진, 예술적 실험과 국제 협력을 아우른다. 올해 32회를 맞이한 축제는 동시대 예술의 가장 앞선 목소리를 담는 일을 지향한다. <나비존>은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작업으로, 2026년 6월 이탈리아 베르바니아 일 마조레 공연예술센터,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회랑 및 복합공간, 탈리아리·사르데냐 네르비 공원에서 이어질 전망이라 더욱 국경을 넘어선 장소특정형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곳 장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작업이 이뤄질지 궁금하지만 직접 그곳에 가서 관람할 수 없는 아쉬움도 크다.
별도의 티켓 구매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덕분에 많은 관객들로 자리를 채운 공연에서 공간이 주는 감성과 무용수들의 독특한 움직임이 더해져 새로운 공간감을 형성했다. 안애순은 한국 현대무용에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움직임과 전통적인 요소를 더해 나름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져왔다. 이는 한국적 전통과 동양적 미학을 현대무용 언어로 풀어내며 세계 무대에서 독창성을 인정 받아온 것이다. 그녀는 개념무용에 있어서도 앞선 시도를 보여왔고, 이번 무대에서는 개념적인 측면보다는 공간이 갖는 의미와 특유의 전통적 움직임이 가미되었다. 그녀와 함께 참여한 이탈리아 안무가 듀오 다미아노 O. 비지, 알레산드라 파올레티(FRITZ Company Bigi/Paoletti)는 토리노단차페스티벌, 프라하 탄츠 국제페스티벌 등 유럽 주요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특히 다미아노 O. 비지는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오랜 멤버이자 드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퍼포머로 활동해 온 실력파 댄서, 안무가이며 알레산드라 파올레티는 이탈리아 국립드라마아카데미 “실비오 다미코”출신으로 이스탄불 시립극장 객원 연출가로 활약한 배우, 연출가이다.


작품 제목처럼 〈나비존: The Butterfly Dream〉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찰나를 형상화한다. ‘나비존’은 호접지몽(胡蝶之夢) 혹은 호접몽으로 불리고 서양권에서는 나비의 꿈(The Butterfly Dream)으로 불리는 설화이다. 장자의 꿈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비존은 꿈 속에서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롭게 노닐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내가 나비였는지, 나비가 내가 되어 날아다녔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는 장자의 ‘무위자연’의 생각을 잘 담고 있는 것으로, 목적의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 그리고 그 경지에 이르면 자연과 융화해 자유로운 삶의 방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꿈과 현실 중 어느 쪽이 진정한 세계인지를 논하는 것보다 이를 모두 긍정해 각각의 장소에서 만족해 살면 좋은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공연을 통해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자연과의 융화,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경계 없는 순간을 지금 이 시간으로 소환했다.
<나비존>은 전통과 현대, 건축과 무용,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선 왕실의 생활공간이었던 창덕궁 낙선재의 목조 건물과 마루, 정원을 무대의 일부로 활용했다. 극장이 아닌 궁궐이라는 장소에서 펼쳐지는 장소특정적 공연이기에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오픈된 공간에서 낙선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사각형의 낙선재 마당에서 첫 무용수의 등장은 오른편 통로에서였다. 이현석은 마치 모델이 워킹하듯 등장해 흔들리듯 모호한 움직임으로 주목도를 높이며 작품이 시작되었고, 5명의 무용수들(김나의, 박성현, 임유정, 김지형, 이현석)은 각자의 다른 질감의 춤으로 자신들을 표현해 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들어 온 커다란 비닐장판을 마당에 무대 플로어처럼 깔고 그 위에서 대사를 하기도 하고 신발을 신은 채 일상적인 동작에서부터 한국무용 춤사위를 해체하고 변용한 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펼쳤다. 긴장과 이완을 교차하며 무표정한 무용수와 감정이 고양된 무용수가 혼재하고, 5명의 무용수가 무리지어 이동하지만 개별적인 존재감도 부각되었다. 그 중 흰색과 노란색의 은박지를 사용해 춤추는 듀엣은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은박지로 만든 공간은 변태를 위한 고치이며 꿈속이자 동굴이기도 했다.

그들은 공간 곳곳을 사용하기보다는 사각 정원을 주축으로 움직임을 펼쳤고 돌기둥과 층계, 마루를 때때로 사용한다. 한옥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전통음악을 상상했던 관객들은 미니멀하고 현대적인 감각의 음악과 마주하고 개량 한복은 아니면서도 한국적 색감과 선이 담긴 의상이 낙선재와 조화를 이뤘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있어서도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몸짓 속에 작은 진동, 멈춤, 여백의 미가 있고 내적 에너지가 없다면 출 수 없는 기본기도 갖췄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고 그 속에 계산된 대칭과 비례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부유하듯 혹은 이 장소를 떠도는 혼령처럼 등장해 한국춤을 추기도 하고 후반부 자신의 옷과 가채를 벗어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특별출연의 손정연도 인상 깊었다. 오래된 제도를 벗어버리고 새 시대로 건너온 그녀는 아마도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담았을 것으로 추측되나 일반 관객들이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이번 협업은 동양의 미학과 서양의 과학적 접근법이 창덕궁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만나 ‘제3의 움직임 언어’를 창조하는 실험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여기서 언급하는 동양의 미학이란 비움과 여백이며, 과학적 접근법이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칭과 비례이다. 사실상 서양의 대칭과 비례 부분이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았기에 동서양 미학의 조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다소 들기는 했지만 감각적인 장면들을 추구하는 안무가들의 노력은 파악 가능했다. 아마도 역사적 장소를 읽고 그들만의 세계를 완성해 가며 서로 다른 언어 간의 대화를 탐구하고 경계를 가로지르는 작업이 주목적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의상과 사운드 디자이너 피정훈의 음악을 더해 시각과 청각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띠었다. 특별히 과거가 아닌 오늘로 소환된 장소, 순수한 몸, 깨어나는 감각 등이 교차하는 공연에서 탈경계의 이미지가 현대 예술의 흐름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비잠>은 만물은 끊임없는 변화를 이루지만 그 본질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장자의 생각이 춤으로 구현된 작품으로 보이며 한국의 문화와 정서, 장소가 타국의 안무가의 시선에 어떻게 비추어지고 발전되었는가에 대한 여정에 참여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더불어 안애순 안무가의 작업 특성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한국 공연 이후 이탈리아 3개 도시 순회공연과 각 도시의 역사적 건축 공간과 주요 축제 무대에서 선보일 <나비잠>의 변화가 성공적이길 이번 협업은 한국 현대무용의 세계 진출과 예술 교류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현대무용이 세계 무대에 널리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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