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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으나 살아 있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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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시어터샤하르는 지우영 안무가가 2003년 12월에 창단한 민간 발레단으로, 고전과 문학을 재해석한 창작 발레를 제작해오고 있다. 이번에 무대에 올린 <안네 프랑크>도 『안네의 일기』라는 문학을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서, 작년에 초연하고 올해 재연 무대를 가졌다. ‘안네의 일기’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기에 문턱이 낮고, 처절하게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미학적으로 구성하여 작품성을 높였다. 창작 발레는 고전 발레에 비해 접근성이 약하기 쉬운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돋보인다. 주역을 맡은 스테파니 김과 정민찬을 비롯하여 호흡을 맞춰온 여러 단원들뿐만 아니라 계원예중 학생들이 참여하여 오늘과 미래의 주역들이 함께했다.

일상. 화사한 음악을 배경으로 여러 색상의 롱스커트를 입은 소녀들의 군무는 행복한 일상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왈츠 리듬에 맞춰 팔과 다리를 길게 뻗는 동작을 보며 그들이 누리는 자유와 희망, 그리고 삶의 기쁨에 동화된다. 하지만 비극은 언제나 일상의 행복을 갉아먹으며 시작된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무대는, 앞으로의 진행을 알기에, 맘껏 즐길 수만은 없었다. 무대 위의 무용수들도 이를 알고는 있겠지만 배역으로서의 그들은 그 사실을 몰라야 한다. 이러한 이중적 관점을 한 몸에 지녀야 하는 갈등은 무대 위의 연기자들에게 지워진 숙명이다. 그리고 미래를 아는 예언자가 된 관객은 즐거운 장면을 즐기지 못하고 무대의 인물에게도 전할 수 없는 카산드라의 숙명을 본의 아니게 지게 된다.

게슈타포. 일상과 극적으로 대조되는 장면은 게슈타포의 장면이다. 전체 극에서 이 둘은 안무와 조명, 의상 등 모든 면에서 대조되도록 설정되었다. 그래서 마치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는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지상의 인류와 지하의 저승사자와 같은 대조이기도 하다. 이들의 역할도 사실상 상당히 비슷하다. 특히 이 둘을 구분하는 밝은 조명과 어둡고 푸른 조명은 평면적 무대를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히틀러의 등장은 나도 모르게 거부하게 된다. 영상이나 조형물로 상징화하거나, 무대 안쪽에 멀리 보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히틀러는 극에 직접 역할을 하는 인물이 아니기도 하고, 또한 부정적 상황의 지나친 구체화는 관객들의 체화를 방해할 수 있다.

키티.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바로 키티다. 안네의 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 인물에 대한 실존적 의미 부여는 전적으로 대본가에게 맡겨지며, 안무가의 몫인 그 구체화 방안은 작품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키가 된다. 이 작품에서 키티는 안네의 분신이자 관찰자다. 그리고 완벽한 소녀이기도 하다. 안네 개인의 일기장이기에 오직 안네와만 소통하며, 안네와 동기화되다가도 완벽한 존재로서 안네를 압도하는 우아한 춤을 선보인다. 안네는 키티의 창조자이나, 이제 키티로부터 배워 성숙하게 된다. 하지만 안네의 가족이 발각되고 일기장이 타인의 손에 쥐어졌을 때 개별 인격체로 분리되는 탄생의 순간을 맞지만, 이는 곧 소멸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 이상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은신처. 가장 긴장된 장소다. 폐쇄된 평화와 응집된 불안 사이의 긴장이 매 순간 집중하게 한다. 특히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를 사용한 부분은 매우 천재적이었다. 베토벤의 혁신적인 혼합 조성(mixed tonality)을 사용한 스토리 전개는 매우 명확하면서도 상징성이 뚜렷했고, 서주와 제1주제, 제2주제의 리듬의 변화가 춤에 반영되어 경이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이 소나타를 이용한 부분만 갈라로 공연해도 훌륭한 단일 작품이 될 것이다. 또한 책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네의 가족과 게슈타포가 마주 섰을 때 조명이 만드는 이원론적 무대 구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배가했다. 살아 있으나 살아 있지 않은 상태.

수용소. 오직 비극만이 존재하는 종착점. 그들의 슬픔은 게슈타포와 마주할 때 현실적이지만, 그들만이 있을 때 더욱 전달력을 얻는다. 거리에서의 장면과 대비되는, 모두 같은 옷을 입은 모습 자체가 매우 강렬하다. 생명이 있으나 없는 그들에게 생명의 언어로서의 춤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팔을 흔들거나 어색한 춤 동작은 매우 상징적이며, 그들의 정해진 미래를 보여준다. 그런데 <올드 랭 사인>이 배경 음악으로 울려 퍼지면서 극의 흐름이 바뀌고 말았다. 가스실로의 행진은 풀렝크의 오페라 <가르멜회 수녀들이 대화>의 마지막 처형 장면을 연상케 했지만,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올드 랭 사인>의 무게감과 현격히 차이가 있었다. 이 장면의 무게감은 어느 쪽에 있는 걸까? 혼란 자체가 의도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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