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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빙하의 흰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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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의 일환으로 창작 발레 〈MELTING〉을 선보였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의 예술감독으로서 안무와 연출을 맡은 백연은 최근 다양한 무용 관련 상을 받으면서 창작 발레의 주요 안무가로 자리 잡았다. 특히 무용과 몸에 대한 미학적 고찰부터 사회적 주제까지 폭넓게 접근하여 그의 작품은 더욱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MELTING〉은 환경 문제라는 사회적 주제를 갖고 있으면서 발레의 아름다움과 호소력을 갖춘 작품이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의 이 작품은 고전의 이미지가 강한 발레를 통해 범상치 않은 창작력으로 오늘을 말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MELTING〉의 주제는 환경으로, 알래스카의 유람선에서 빙하를 마주하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실제 상황을 옮겨온 시나리오와 연출은 현실감 있게 다가왔으며, 주제의 진정성 또한 강하게 전달되었다. 특히 경험에 동참시키는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막이 오르기 전부터 무대에서 얼음으로 유람선을 조각하며 상황을 표현했고, 객석 한쪽에 흘러내리는 얼음과 같은 장치를 두어 객석의 관객에게 유람선 안에서 빙하를 보는 관람객(혹은 방관자)이라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러한 구도에서 객석 여기저기에 앉은 무용수들이 구 모양의 얼음을 서로 떠넘기며 폭탄 돌리기를 하는 연출에서 이미 의도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이미 성공했다.

객석에 있었던 무용수들이 무대로 올라오면서 점퍼를 착용한 채 몸짓을 펼친다. 그리고 그중에 망원경을 들고 빙하와 야생 동물을 관찰하는 한 사람이 함께한다. 실제 경험에서는 이들이 뒤엉킬 리는 없지만, 멀리 떨어져 벌어지는 사건을 한 공간에 투영함으로써 안무가가 느꼈던 내적 갈등을 외적 무대에 구현했다. 소설가 한강이 『흰』(개정판)의 ‘작가의 말’에서 적은 말이 떠올랐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하얀 무대와 점퍼는 빙하와 이곳에서 사는 동물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무대를 비추는 빛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희게 보이는 소름 돋는 환상에 휩싸였다. 무용수들은 한 발은 삶에, 한 발은 죽음에 딛고 있다.

“빙하와 야생동물들이 우리를 바라본다면,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프로그램북에 적혀있는 안무자 백연의 글이다. 어느덧 망원경이 관찰자가 아닌 관찰된 존재의 손에 쥐어져 있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덧 망원경은 객석에, 아니 유람선에 있는 나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 볼까? (사실 이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두꺼운 점퍼를 차츰 벗고 ‘흰’에서 ‘어두운’으로 전환된다. 이제는 두 발 모두 죽음 위에 두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비로소 드러난 몸의 언어는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안무는 발레를 넘어 현대무용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군무는 일치함으로써 압도하지 않고, 마치 대위적으로 진행하는 다성부 음악처럼 분산된 각자의 움직임으로 어두운 아우라를 뒤섞는다. 그렇기에 각자의 몸짓은 발레의 우아함을 부족함 없이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전체의 움직임은 절규로 투사한다. 특히 발레의 몸짓으로 상체를 바닥까지 낮춘 모습은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청색의 조명은 이제 빙하가 녹은 물속에서 헤엄을 쳐야 하는 환경의 변화를 더욱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한 가지, 객석에서 시작하여 객석으로 마무리하는 전개는 객석의 의미를 한 장면의 이벤트가 아닌, 공연 내내 지속되는 의미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무용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객석에 설치된 무대장치, 시시각각 변하는 강렬한 색조의 조명 등이 공간 전체를 환상적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클래식부터 감성적인 선율, 강박적 리듬, 그리고 빙하가 무너지는 직접적인 음향효과까지 세심하게 준비된 음악은 드라마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빙하가 녹고 동물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바라본다는 설정과 여기에서 비롯된 갈등은 드라마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무대 안쪽에 설치된 기둥이 무너지는 설정도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이 공연은 발레를 넘어 종합적 무대를 구현한 무용극(Tanztheater)에 이른다. 설정된 상황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진행으로 구체화해 볼 것을 권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비평지원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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