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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 대한 거대한 심리학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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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홍콩위크 2025@서울’의 마지막 공연은 홍콩현대무용단 ‘City Contemporary Dance Company’의 <미스터 블랭크 2.0>이었다. 안무가 상지자(Sang Jijia/桑吉加)의 작품으로서, 폴 오스터의 소설 『기록실로의 여행』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미스터 블랭크’를 제목으로 가져왔다. 장르는 무용이지만 볼수록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들의 동작의 적지 않은 부분은 안무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고 공연 내내 흐릿한 유리로 가로막고 관객과의 소통을 차단한, 객석에서 보기에도 답답한 공간은 무대 세트를 넘어 하나의 사회와 생태계를 구성한다. 관객과의 소통을 차단한 공연. 이것은 객석 또한 차단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표현은 실제다. 안무가는 무용수들에게 상황을 표현하라는 미션만을 주었고, 무용수들은 모든 것을 실제와 같이, 아니 실제로서 격렬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무가 주어졌을 때, 그들은 숙련된 아름다운 선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선에는 생기가 없다. 그들은 살아 있어 춤을 추지만, 동시에 죽은 자와 같이 힘없이 늘어져 있다. 그들은 군무를 추며 압도하지만, 동시에 생명이 없는 사물과 같이 기계적일 뿐이다. 죽음을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 있는 어떤 꿈도 없이 하루를 똑같이 살고 있는 모습은, 우리도 그들에게는 유리 벽 너머에 존재임을 말한다. 무대에 놓여있는 책상과 의자는 지금 내 앞에도 놓여있다.

무대의 벽과 유리에 투영되는 영상디렉터 올리버 싱의 영상은 작품 전개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조직적으로 또한 컴퓨터로 치밀하게 감시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무용수들은 어느 순간 스크린 속의 캐릭터로 인지되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인간성이 삭제된 타자로서 바라보게 된다. 객석에 설치된 여섯 개의 감시 모니터는 이를 확증한다. 그리고 관객은 뿌연 유리 벽 너머의 갇힌 세상을 보며,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시자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알았을까? 관객도 유리 벽 너머에서 바라보는, 혹은 무대와 객석을 모두 바라보는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받는 대상이 되었음을.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바로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도 연상시킨다. “본 시설은 귀하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CCTV로 감시되고 있습니다.” 사생활은 없지만, 그래도 안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절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벽과 유리를 힘껏 두드리고, 요원들의 폭력을 피해 책상에 숨고 바닥을 구르며 달아난다. 무용으로 보이는가? 탈출 묘기를 보여주던 한 마술사가 탈출에 실패해 수많은 관객 앞에서 죽어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온몸의 열이 솟구치고 살갗에 소름이 돋는 끔찍한 실제였다. 우리는 그들을 구조해야 했지만, 모두 관객이라는 역할에 충실하여 편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다 선을 그리는 무용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 세계가 인간 사회에 대한 메시지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살았으나 산 것이 아니다. 안전은 그런 것이다. 불안한 삶과 안전한 죽음의 경계에 놓여있다. 그런데 누군가 비밀을 알고 있다. 삶이 불안이 아니라 꿈이라는 걸. “꿈. 네 걸음 걸어, 왼손을 들고, 문을 밀어서 연다.” 그는 종이에 적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하지만 다시 자기에게도 돌아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한다. 그는 왜 스스로 그 문을 열지 않았을까? 한 사람이 요원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더라도,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다. 그 역시 삶은 두렵고, 꿈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일지도. 이 종이비행기는 관객 모두에게도 주어졌다. 왜 나는 걷지 못하고, 손을 들지 못하고, 문을 밀지 않는가? 그들의 거칠고 사실적인 몸짓은 절망에 안주하는 인간에 대한 메시지다.

문은 두 번 열린다. 한 번은 처음에 계도 요원이 들어올 때, 그리고 마지막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 모든 사람이 죽음을 목도하고,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무도 열린 문으로 나가지 않는다. ‘푸른수염’의 지하 감옥에 갇힌 다섯 명의 전처들이 구조되었지만 아무도 성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메테를링크의 상징주의 희곡 『아리안과 푸른수염』처럼, 그들은 감시와 폭력의 대상이라는 역할에 흡수된 것인가? 이제는 삶과 꿈이 그들에게 타자와 같이 느껴진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그렇지 않은가? 벽을 힘차게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도 꿈쩍없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들에게 안전을 확인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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